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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은 단군을 천자로 알현했다

요임금으로부터 왕통을 전수받은 순임금이 동쪽을 향해서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경』 「순전」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

순임금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

‘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구절은『 서경』「 우서虞書의 순전舜典」에 나온다.

“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여기서 동후東后는 결코 제후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 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또한 요즈음 나오는『 서경』번역서들도 모두 중국측 억지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심한 실정이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后: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후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 드린다는 말이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覲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으니,‘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동방의 제후를 찾아뵙다”라고 한 중국측의 해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 서경』의 이 구절이야말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사실 그대로 극명하게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서『 서경』 본래의 뜻을 살려 원문을 해석하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천자이신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가 된다.『 ( 환단고기』역주본 본문 488쪽 미주)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동방의 군주를 알현하고 시(時)와 달을 맞추시고 날짜를 바로잡았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표준으로서의 음률과 도량형은 천자만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동방의 단군을 알현하고 천자국인 단군조선과 날짜,음률,도향령을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사근동후'만을 보아서는 안된다. 

상서순전(尙書舜典)에는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대종(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후를 알현하고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오례와 오옥 세 가지 비단, 두 가지 산 짐승, 한 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 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 후 돌려 드렸다. (歲二月東巡守至于垈宗 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순임금 시절의 고대 중국은 단군조선과 서로 율도량형을 통일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순임금이 동방의 천자(동후)를 조근할날때만 기록이 있다. 

이와 연관하여 2대 부루단군 시절인 BCE 2238년에  도량형통일이 이루어졌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계묘 3년(B.C2238) 9월 조칙을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머리를 덮게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도량형을 모두 관의 표준에 맞게 통일하고 삼베와 모시의 시장 가격을 어디서나 똑같게 하셨다.  백성들 서로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안하였다. (단군세기)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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