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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아흘 단군 시절 은나라를 응징하다

은나라 27대 무을왕 때 고조선은 은나라를 초토화시킨다.

<단군세기>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23세 아흘단군 2년(bce 1236년) 람국(藍國)왕 금달이 청구(靑邱)국왕, 구려(句麗)국왕과 더불어 주개에서 만나 몽고리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르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오지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흘단군께서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고 포고씨를 엄(淹)에,영고씨를 서(徐)에,방고씨를 회(淮)에 봉하시니 은나라 사람이 이것을 보고 겁내어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

은나라는 단군조선에 의해 거의 멸망 직전이었다.

람국은 《규원사화》에서도 볼 수 있다. 
蚩尤氏之後, 封于南西之地, 巨野浩豁, 海天靚碧, 曰藍國, 宅奄慮忽.
치우씨의 후손에게는 서남쪽의 땅에 봉하니, 거대한 들녘은 매우 광활하고 바다와 하늘은 밝고 푸르기에  람국(藍國)이라 이름하고 엄려홀(奄慮忽)에 자리잡아 다스리게 하였다.

이러한 <단군세기>의 기록은 중국의 <후한서>에도 거의 같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서강전> “은 왕실이 쇠미해지자 여러 동이가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殷室中衰諸夷皆叛)” 
(후한서> “무을이 포악하니 견융이 변방을 침략하였다. (武乙暴虐 犬戎寇邊)”
<동이전> “은나라 무을이 쇠폐하자 동이가 점차 강성해져 마침내 회대 땅으로 나누어 옮겨와 점차 중토에 머무르게 되었다.(武乙衰弊 東夷寢盛 遂分遷淮岱 漸居中土)”

은나라의 무을이 퇴락의 길로 빠지가 강성한 동이들이 쳐들어와 회대땅을 점거했다는 이  기록은 앞에서본 23세 아흘단군 때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또한 사마천은 <사기>에서 “은나라 27대 무을은 황음무도한 짓을 좋아해 천신(天神)을 모독하고 농락하는 것을 즐기며 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황하와 위수로 사냥을 나갔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을이 벼락을 맞고 죽었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교묘히 왜곡한 것이며 실상은 고조선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가 농락했다는 천신은 상국인 고조선을 의미한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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