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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금산사 대장전 위치가 옮겨진 이유

허련의 금산사도

허련(1808-1893)은 조선 말에 활동한 남종 문인화가이다. 진도 출신으로 대흥사의 초의 스님과 인연이 깊다. 초의 스님을 통해 불교를 공부하고 화헙의 기초를 닦았다. 또 초의 스님의 주선으로 추사 김정희 문화에서 수학하였다. 허련은 50대의 대부분을 전주,임피 등 전북 지역에서 보냈는데 이때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작은 화면에 모악산과 금산사의 실경을 충실히 담았다. 19세기 중반 금산사 가람배치 변화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그림 속 배치를 보면 이때에는 지금과 달리 금산사 미륵전 앞에 대장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 대장전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의 오른쪽 앞에 위치하였던 목조탑(木造塔)으로서 미륵전을 장엄하게 꾸며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미륵전과 함께 건립된 이 탑은 후에 탑안에 불상이나 경전을 장치하는 것이 습관화 되자 탑이라는 본래의 면목을 상실하고 대장전이라는 불전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조선 인조 13년(163년)에 다시 세울 때에는 철개(鐵蓋)와 보주석(寶珠石)만을 지금처럼 지붕 위에 남겨 놓고 아예 그 구조까지도 보통 당우(堂宇)인 팔작지붕 다포식 건축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탑의 성격과 형태가 바뀌어 미륵전을 꾸며주는 역할을 상실하게 되자, 192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디지털 김제시대)

대장전은 불경을 보관하거나 불경목판을 보관하는 사찰건물을 말한다. 미륵전을 장엄하는 목조탑으로 미륵전과 함께 일찍이 건립 되었으나​ 후일 이 건물에 경전을 봉안하면서 대장전으로 변화되었다. 현재는 장경각의 기능은 없어지고 내부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금산사 대장전은 1985년에 보물 제 827호로 지정되었다.

금산사 연혁, 출처 : 불교중앙박물관

증산도 도전에는 금산사 미륵전 앞에 있던 대장전을 옮기는 공사가 있다. 이를 통해서 미륵전 앞이 훤희 넓어지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그 글을 공우와 광찬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전 앞에 대장전(大藏殿)이 있어 불편하니 너희 두 사람은 이 물목기(物目記)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대장전 석가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종이를 불사르라.” 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 뒤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대장전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우니 비로소 미륵전 앞이 넓어지니라. (증산도 道典 5:282:5-8)

출처 : STB상생방송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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