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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회분 4호묘와 문왕팔괘도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4호묘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 우산촌에 있다. 석면 위에 직접 벽화를 그렸으며 벽화의 주제는 사신이다.
위의 그림은 오회분 4호묘 북벽에 그려진 인물도이다. 한 고구려인이 녹색 도포를 입고 연화좌 위에 앉아 왼손으로 감괘坎卦를 짚고 있다. 이 도사는 고구려에 관방도교가 수입되기 이전의 조의선인 격의 도사이다. 중국 도교와 관련이 없는 한민족의 독자적인 원시 도교의 이 도사는 불교의 상징인 연화좌 위에 앉은 모습이 이채롭다. 팔괘는 ‘문왕8괘도’ 이다.
팔괘도의 출처
팔괘도는 그 출처를 둘러싸고 중국 역학사易學史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다. 팔괘도가 처음 유포된 것은 북송 초였다. 도사 진단(陳搏, ?-989)은 태극도, 팔괘도 등 상수역학의 도상圖上들을 세상에 처음 내놨는데, 그 출처를 의심한 이들이 그의 설이 담긴 책을 위서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북송 오현 중의 한 사람인 소옹(邵雍, 1011-1077)이 실질적인 팔괘도의 제창자로도 알려지기도 하였다. 소옹은 <역경(易經)>이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전에 복희씨가 만든 원초적인 역(易)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을 뒷날의 후천역(後天易)과 구별하기 위해 선천역(先天易)이라 하고 몇 가지 그림으로 복원했는데, 주역 설괘전을 바탕으로 건남곤북(乾南坤北)과 리동감서(離東坎西)의 괘상을 복원한 것이 선천도(先天圖) 혹은 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다. 선생은 이 선천도를 바탕으로 유불선의 사상을 포용하고 상수철학의 정신을 엮어 ‘선천학(先天學)’이란 학문을 제창하였다.
훗날 이 학문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에게 전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있는 복희팔괘도가 선천도로서 바로 소강절 선생께서 처음으로 복원한 그림이다. 이를 성리학자 주자(1130-1200)가 <역학계몽>과 <주역본의>의 저술에 실음으로써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진단이 팔괘도를 처음 그렸는가?
그렇다면 팔괘도는 정말 진단 때 세상에 처음 나타난 것일까? 소옹이 정말 팔괘도의 실질적인 제창자일까?
[주역]<계사전>에서는 “古者包犧氏王天下也...始作八卦” 라고 하여 태호복희씨가 팔괘도를 처음 그렸다고 한다. 이어 낙서洛書는 우임금이 9년 치수사업 중에, 문왕팔괘도는 문왕이 유리라는 감옥에 갇혔을 때 시획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처럼 일찍부터 만들어진 복희8괘도와 문왕8괘도는 중국의 어떤 전적, 고전에도 실려 전해지지 못했다. <하도>와 <낙서>, 팔괘도 등이 중국의 왕실 도서관에 비장된 신보神寶라서 아무나 취급할 수 없었던 것일까. 주공과 공자, 맹자 이래로 인문주의 학풍과, 왕필의 의리역학에 의해 외면을 받아서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태극도와 팔괘도 등 상수역학의 도상들은 도가에서 역외별전易外別傳 되었다는 설마저 나타났다. 그렇게 은밀하게 비전돼 온 상수역학의 도상들을 도교의 도사 진단이 북송 초에 <역용도易龍圖>를 통해 내놓자 그 출처에 대해서 크게 의심을 받고 말았다.
중국보다 500년 앞선 문왕8괘도
그런데 진단이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고도 하는 문왕팔괘도가 놀랍게도 오회분 4호묘 고구려벽화에 등장하고 있다. 중국보다 500년가량 앞선다고 볼 수 있는 문왕팔괘도 도상이 고구려 벽화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첫째는 <하도>와 복희팔괘도가 배달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회분4호묘의 팔괘도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우리나라 독자적인 팔괘도가 아니냐는 설이다. 정재서 교수는 원시 도교는 홍산문명이 발아했던 지역인 요하지역에서 처음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시 역학도 요하지역에서 처음 발생하였고, 고구려 벽화는 중국과 별개의 독자적인 팔괘도를 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설이다.
둘째는 팔괘도는 처음 배달국에서 시획始劃되었다 하더라도, 문왕과 주공, 공자의 흐름을 잇는 경학으로서의 역학易學과 제나라의 추연과 한대漢代의 경방역을 잇는 상수역학이 중국에서 커다란 부흥기를 거쳤다. 그러던 중에 공자와 왕필 등에 의한 의리역학이 주도적 지위를 형성하자, 음지에서 숨어지내던 상수역학의 일파가 고구려로 망명, 고구려 벽화에 그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니냐 하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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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고구려인은 팔괘를 공부했다. 팔괘를 이해하려면 사상을 알아야 하고 사상을 알려고 하면 음양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고구려인들은 음양오행과 사상 팔괘를 모두 공부하고 교육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특정 계층의 고구려인들만 이런 교육을 받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의식주 생활뿐 아니라 어떤 사상,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는가하는 것을 알 수있는 귀중한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자료 주요 출처 : https://blog.naver.com/gnbone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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