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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과 코로나 과거와 현재는 닮아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던 14세기 이후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2020년의 시대적 상황은 물론이고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까지 예상 할 수 있다.

유럽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227년~337년)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며, 기독교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하였다. 그후 테오도시우스 1세는 380년에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오랜기간 박해와 핍박을 받던 기독교는 이때부터 로마에서 특혜를 받는 기독교로 바뀌면서, 교회 타락의 역사가 시작을 하게 된다. 교회가 권력을 잡게 되고, 교회로 돈이 모이게 되면서, 교회의 첨탑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콘스탄티누스대제는 330년에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을 바꿨다. 로마제국의 수도가 이전하자, 황제와 모든 정부기관이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하면서,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의 갈등이 시작된다. 

즉 기독교를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하면서, 로마는 5개의 교구로 나뉘게 되는데, 제 1교구가 당연히 정통성을 지닌 로마 교구 였지만, 황제가 수도를 이전한 것은, 교회의 권위와 정통성도 함께 이동한 것이라며 정통성 싸움이 시작된다. (5개의 교구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다.)

이때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이동을 해서 로마에는 황제가 없었는데, 로마에서 황제를 배출하게 되며 교황이 생기게 된다. 그 후 410년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으로 로마 제국은 둘로 나뉘게 되고 476년에 서로마 제국은 문을 닫게 된다. 그러면서 종교가 분열되며 동방정교(Orthodox)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의 종교 분열도 결국은 권력을 잡기위한 싸움으로 종교의 본심을 잃어서 발생한 것이다. 

8세기가 되면서 교황은 세속 군주화 되기 시작했고, 수도원은 점점 부유해지고, 약탈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경 대신 칼을 손에 들었다. 또한 그들은 교황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그들의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교회의 정치적 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2세기에 신권정치(神政, : theocracy)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후에 교회를 국가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게 된다. 

유럽의 교회가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하던 이때 유럽 인구의 1/3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는 흑사병이 발생하게 되지만, 그 당시 흑사병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형벌로 병을 내렸기에, 병에 걸리는 이유가 죄로 인함이고, 죄로 인해 죽는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형벌에서 살기 위해 교회로 향하게 되었고, 교회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려했지만 그 어떠한 해결 방법이 없었다. 

특히, 고위 성직자는 흑사병을 피해 도망가기 급급했고, 교회에서 예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등장하지 않은 주교들도 많이 있었다. 성도들과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고위 성직자들이 도망갔던 이유는 고위 성직자임에도 흑사병이 피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직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기독교의 공인과 동시에 타락하기 시작했던 교회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부족한 성직자를 채우기 위해 급한데로 자질이 부족한 성직자들로 교회를 채우면서 교회는 더욱 타락을 하기 시작한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때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6세 (재임기간 1342년~1352년)는 흑사병을 예방하기 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며, 많은 성금을 걷어 개인의 재산으로 축적을 하기도 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쓰는 동안 모든 교회의 시스템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더 이상 신앙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 과학을 공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인문주의가 시작 된다.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도상에 사라지는 동시에, 흑사병 자체보다 인간 사회속에 더 큰 난리로 다가왔다. 가치관의 변화, 윤리 의식의 타락, 종교 시스템의 붕괴, 영주들은 수입 창출을 위해 더 큰 세금을 부과했고, 그로 인해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나며, 봉건주의를 유지하던 농노제도의 붕괴로 인한 국가 시스템이 무너져 내렸다. 

이렇든 흑사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닌, 병에 의한 난리 즉 유럽의 병란(病亂)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대부분의 재산을 지키며, 축적해온 곳이 바로 교회와 수도원이다. 농토는 황폐화되어 있고, 서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서민들을 위해 내놓지 않았다. 특히 타락한 성직자들은 더 이상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특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한복음) 라는 말씀처럼 누구나 성찬식에서 이종성찬(혹은 양종성찬)을 진행해야 했지만, 서민들에게는 예수님의 살이라 하는 빵만 지급이 되고, 포도주는 지급이 되지 않았다. (포도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대부분 수도원 재산이었고, 지금도 수도원에서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그때 12년간 카를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얀 후스(1372~1415)가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고, 흑사병 이전의 초기 기독교의 모습으로 돌아가야하고, 양종성찬(이종성찬)을 주장하며, 사실상 마틴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시작했던 인물이다. (얀 후스의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이렇든, 흑사병으로 인해 모든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도덕성과 모든 법 질서가 무너지고, 종교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며 종교개혁이 시작되게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내용이 유럽의 중세시대의 이야기지만, 흑사병이라는 단어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바꾼다고 해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어, 정부는 '비대면 예배' 조치를 내렸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예배 금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며 종교 탄압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보자. 이미 대규모 집회로 인해 한 교회에서 많은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으며, 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이 부족한 비상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난 부활절을 앞두고 독일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보다 생명의 보호가 우선시 돼야 한다."며 종교 행사 금지 조치가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하면 "종교 행사 금지 조치가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지라도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기본 권리에 우선한다."고 강조하였다. 

출처 : https://www.sueddeutsche.de/politik/coronavirus-kirche-bundesverfassungsgericht-1.4874406

우리도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결코 종교 탄압이 아니다. 교회는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성도들의 가정을 바라봐야 하고, 사회적 책임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성도들의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를 섬길 수 있는 마음을 갖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흑사병 이후 타락한 성직자들과 교회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상황이 후에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헬버슨(Richard C. Halverson) 목사의 말로 당부한다.

“In the beginning the church was a fellowship of men and women centering on the living Christ. Then the church moved to Greece, where it became a philosophy. Then it moved to Rome, where it became an institution. Next, it moved to Europe, where it became a culture. And, finally, it moved to America, where it became an enterprise.”

현오 기자  yanogu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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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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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야나 2020-08-24 10:16:44

    [카카오 번역]
    초기에 교회는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한 남녀의 펠로우십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로 이주하여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로마로 이주하여 기관이 되었다.
    다음으로 유럽으로 이주하여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업이 되었다.   삭제

    • 원시반본 2020-08-23 19:29:21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기자님   삭제

      • 조르바 2020-08-23 16:59:52

        흑사병의 해결보단 본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이용한 기득권자들...지금의 몇몇 정치인, 종교인들의 행보와 같아 씁쓸하네요.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삭제

        • 곰선생 2020-08-23 16:04:09

          정말 기자분께서 유럽역사에 대해 해박하십니다.   삭제

          • 은서 2020-08-23 13:28:43

            리처드 헬버슨 목사의 당부의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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