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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눌의 『고대사 메모』 - 천문비기(天文秘記) 11만 년 고조선의 흔적을 찾아서

한문수(성균관석전교육원 교수)

 

“盡入書雲觀所藏《天文秘記》于內” ‘서운관(書雲觀)에 간수했던 ‘천문비기(天文秘記)’를 궐내(闕內)로 들이게 하라’1,421년 7월 세종실록은 짧고 간략한 13자(字)의 기록을 남겼다.

비기(秘記)는 비밀스러운 기록이다. 천문(天文)이라했으니, 하늘의 비밀이 담긴 기록일 터이다. 세종이 비장(秘藏)의 천문서(天文書)를 구중궁궐 깊숙히 감추어 두고 비밀하게 살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시기의 기록이며, 어떻게 전해졌을까? 비기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조선의 천문서와 천문기기가 편찬 제작된 시기, 그 의문점들을 풀어보자.

▲북극성(폴라리스)를 중심으로 천구 별들이 회전하는 모습.&nbsp;카시오페이아자리와&nbsp;큰곰자리로부터 폴라리스를 찾는 방법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제후국(諸侯國)의 군왕(群王)들이 독자적으로 천문을 읽는 것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하물며 속국 조선이 그러한 생각과 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크나 큰 불충(不忠)이며, 역모(逆謀)에 해당되었다.

1397년(태조 6)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어제시(御題詩)를 통해 "하늘 끝 땅 끝까지 중화(中華)의 경계"라 하여 조선 또한 명나라의 영역임을 천명했다.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천문을 비밀히 한 이유였을 터이다.

천문학은 제왕학(帝王學)이다. 임금은 하늘과 감응하여 천명(天命)을 수행하는 자로 하늘의 섭리를 살펴야 했다. 단, 왕명을 받은 자만이 이를 수행했다. 이를 위해 역(曆)을 만들어 백성들이 농사를 시기에 맞추어 짖게 해주어야 했다. 식이위천(食以爲天),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아야 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데 있다. 생명보다 더 존귀한 땅의 가치, 꿈과 희망이다. 임금은 이를 해소하므로써 사명과 권위를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의 서운관이 할 수 있는 일은 황제가 하사하는 역서(曆書)만을 근거로 일월식(日月蝕)을 예측하는 일이었을 뿐, 단군조선이 집대성한 천문학은 감히 드러낼 수조차 없었을 터이다.

고려 복권을 위한 끊임없는 민중 저항은 신생 조선을 통치하는데 불안과 초조,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고려왕씨(高麗王氏)들의 씨를 말려 후환을 없앳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만들어 고조선(古朝鮮) 하늘을 반도의 하늘로 둔갑시켜야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수정, 삭제하여 본 뜻을 왜곡하고 위조했다. 신지비사(神誌秘詞)를 활용, 신비로움을 조장하여 백성의 눈을 현혹시켰다. 반정세력(反正勢力)을 억압하고자 그들을 백정(白丁)으로 낙인했다. 대륙지명을 반도로 이식, 군현(郡縣)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했다.

▲‘천문류 초(天文類秒)’와 上 내용/ 고조선의 천문 명칭과는 상이(相異)하다.

이제는 하늘이다. 신생 조선에 맞는 천문서가 시급했다. 명나라의 감시망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최선책은 천문비기에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의 천문서 내용을 모사(模寫)하는 방법이다. 모방(模倣)했으되, 창조적(創造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천문서 ‘천문류 초(天文類秒)’가 탄생한 배경이었을 터이다.

단군조선의 천문비기, 그 의구심은 배경 설명에서 자세히 드러난다. ‘천문(天文)’에 ‘류(類)’와 ‘초(抄)’를 붙여 제(題)했다. ‘류’는 여러 형태와 종류이고, ‘초‘의 뜻은 본래의 내용을 간추렸음을 의미한다. 즉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천문에 관련된 여러 책을 모아 베끼고, 수정해서 만든 책이라는 뜻이다.

1818년 성주덕(成周悳 1759-?)이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순지가 임금의 명을 받아 왕희명(王希明)의 보천가(步天歌)와 여러 설을 판별하여 그 취지와 의미를 해석하였으며, 천지·풍운·우레의 설을 붙인 것”이라 했다.

보천가는 수(隋)나라 단원자(丹元子 王希明)가 별자리를 3원(垣) 28수(宿)로 나누고, 이를 암기하기 쉽도록 칠언시(七言詩)의 형태로 서술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체제와 서술방식이 중국의 천문학과 다른 자주적 학문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는 점이다.

바로 고조선의 찬란한 과학 문명을 담은 천문서 ‘천문비기’를 토대로 체재를 정리했다는 개연성(蓋然性)이 보이는 부분이다. 명나라의 감시와 규제를 기묘하게 피했다. 이 같은 사실적(史實的) 기록은 단군역대 기록에서 나타난다. 아래 글에서 다시 논하겠다.

‘천문류 초’는 2권으로 되어 있으며, 1권은 삼원(三垣) 28수(宿)의 체계에 따라 각 별자리에 대한 설명, 해석 등을 자세히 서술하였고, 2권은 해와 달, 오행성, 혜성, 객성, 구름 등의 천문, 기상 현상에 대한 설명 및 해석을 서술하였다.

1권의 별자리 설명에는 《보천가》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서 모사한 별자리의 그림이 곁들여졌다.

                          【 2부가 곧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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