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110년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의 주권이 박탈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목숨을 스스로 끊은 선비들이 있으니 그 중심에 매천 황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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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시절.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명확하게 당시를 조명하는게 쉽지 않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당대 시인이자 학자였던 황현이 쓴 ‘매천야록’이 남아 있다. 매천야록은 총 6권 7책으로 그 양이 방대하다. 한 선비의 기록으로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당시 정치,사회, 경제, 문화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매천 황현은 해학 이기, 석정 이정직 선생과 더불어 호남 3절(三絶, 또는 三才)로 불렸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9년 7월 나라가 넘어간데 울분을 참지 못하여 절식 순국하였다. 매천 황현(1855~1910)은 국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역사 기록을 남기고 통분 속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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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 絶命詩
一 首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백발이 성한 세월에 난리 속을 이르러니
이 목숨 물리칠까 하였지만 그리 하지 못하였고
오늘에는 더 이상을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바람에 날리는 촛불만이 창천에 비치도다.
二 首
妖氣掩?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九闕沈沈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琳琅一紙淚千絲(임랑일지루천사)
요망한 기운에 가려 제국의 별 옮겨지고
옛 궁궐은 가라앉아 글은 새고 느려 터져
이제는 따르고 쫓을 조칙마저 다시없을 것이러니
옥같이 아름다웠던 우리 천가닥 눈물만 흘리도다.
三 首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고국강산 찌그러져 짐승도 슬피 울고 나는 새도 슬피 우니
무궁화 이 강산은 가라앉아 사라지고
세월의 등잔불 아래 천고의 한 덮어두니
참다운 지식인 되어 인간답기 어렵도다.
四 首
會無支廈半椽功(회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부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陳東(당시괴불섭진동)
일찍이 나라를 위해 반 조각만한 공도 없었었고
다만 인(仁)을 이룰 뿐 충(忠)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송나라의 윤곡처럼 자결할 뿐이니
의당, ‘진동’처럼 몰아붙이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뿐이로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그의 죽음에 1914년 추모시 '매천 선생'을 친필로 써서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의리로써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 한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네/ 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 저승에는 남기지 마소서/ 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
한편, 매천 황현이 사용한 벼루·벼루집·필통 등 ‘매천 황현 문방구류’(19점)를 문화재로 5일 등록 예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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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벼루 3점에는 직접 지은 벼루 명이 새겨져 있고 원형이 잘 보존돼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던 황현의 학자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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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그가 일상에서 쓰던 안경, 향로, 합죽선 등 ‘매천 황현 생활유물’(35점)도 문화재가 된다. 이들 유물은 만든 솜씨나 기법이 우수한 데다 동시대 선비들의 물질문화 생활상을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경술국치일, 조선의 선비 매천 선생의 충절을 생각해본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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