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에는 서기 761년부터 817년까지 4대 58년간 당나라와 맞서며 산동반도 일대를 장악했던 독립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732~781)가 세운 평로치청왕국이다.
![]() |
이정기(李正己)는 당나라 산둥반도 일대 15개 주를 다스린 고구려 출신의 장군이며, 번진 평로치청의 절도사다. 동북지역인 당시의 산둥성, 하남성, 강소성 등 15개 주를 차지하고 독립왕국의 기초를 세웠다
이정기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중국 정사인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에 수록되어있고 국내 문헌으로는 유일하게 환단고기에 기록되어있다. 특히 『환단고기』에는 이정기가 나라를 세우자 대진국(발해) 문황제가 군사를 보내 싸움을 돕게 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대흥 45년 치정의 절도사 이정기는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제는 장수를 보내 싸움을 돕게 하더라. 이정기는 고구려 사람이요, 평로에서 태어났다. 22(?),년 장수들은 군사 이희일을 쫓고 정기를 즉위시켰으나 죽었고, 아들인 납이 아버지의 백성들을 통솔하였다. 56년 납도 죽고 아들 사고가 그 자리를 이었다. 사고가 죽었을 때 가인들은 상을 발하지 않고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도를 맞아 고를 모셨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제나라는 그의 후손인 이납, 이사고, 이사도로 이어지면서 4대 55년 동안 당을 압박하고 뒤흔들었다. 또 이사도는 당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했다.
![]() |
| 이정기의 제나라, 통치범위 출처 : 동북아역사재단 |
중국의 정사로 꼽히는 '신·구당서' '자치통감' 등은 '당나라는 제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수시로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에게 관직을 내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대흥 45년(AD 781년) 치청절도사(淄靑節度使) 이정기(李正己)는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 군에 항거하였다. 황제는 장수를 보내 전쟁을 도왔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이정기는 발해(대진국)의 막강한 후원을 받으며 당나라 정벌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왜 당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서토정벌에 성공한 '고선지'는 영웅시하면서 왜 이정기는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이정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후반
위서론자들은 이정기에 대한 논문이 1975년에도 있었다면서 그것을 베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논문이 있는지 이유립 선생이 알았을리도 모르거니와 이정기 장군이 실제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에 와서다.

1997년 다큐에서 중국 청주박물관 부관장 씨아밍차이씨의 말을 들어보자
"언젠가는 당신들이 찾아 올 줄 알았다.... 이정기는 당신들 한국인의 선조다. 이정기https://youtu.be/yUVtVZULXZQ의 나라 는 형식상 당나라에 속했으나 실제로는 조세, 법률 등을 독자적으로 시행하던 산동성 전체 와 하북, 하남, 안휘성을 다스린 독립왕국이었다......"
고구려의 영웅 이정기! 어찌하여 이같이 찬란했던 민족의 영웅이, 민족의 정신이 1,200년 간 역사의 저편에 묻혀 있었던가? 왜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처럼 고증이 확실한 고구려의 후예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이제는 과거의 친일 식민사관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할 때이다.
KBS 한국사전 – 대륙 속의 고구려 왕국, 제왕 이정기 https://youtu.be/yUVtVZULXZQ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