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광복군을 지휘한 채원개(1895.3~1974.2)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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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 제공. |
채원개는 1895년 3월 24일 평안남도 영원군 온화면 온양리에서 채병묵(蔡秉默)의 아들로 태어났다. 개신교 계열의 의명소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평생 군인의 삶을 시작했다.
1919년 3.1 혁명이 발발하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되 감금되었다가 탈옥한 후 만주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훈련책으로 활동했다. 1920년 대한독립단 통임관구 지대장을 맡아 독립군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하다가 관통상을 당했다.
이듬해 통의부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한 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에 참여했다.
1923년 6월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해 체계적인 군사학을 배웠고, 중국 군벌의 내전에도 참여해 본격적인 실전 경험을 쌓았다.
1925년 2월 “교포들의 권(勸)에 의하여 임시의정원 보궐선거에 후보로 나서” 임시의정원 평안남도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3월에는 임정 대한민국탄핵재판소 심판위원에 선임되어, 이승만 대통령 탄핵에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3월 11일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위원’〔위원장: 나창헌, 위원: 곽헌·채원개·김현구·최석순〕의 한 사람으로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서’를 발표하였다.
1925년 임시정부 육군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되어 정의부와 참의부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만주로 건너가 지도자들을 만나 갈등을 봉합하고 중재했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맡아 제대로 된 군사양성 기관이 없이 무장투쟁하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했다.
1930년 이후 중국육군제59사 작전참모, 중국육군제2사 참모처장, 교도단장, 중국제19집단군 총사령부 작전참모, 중국육군제78사 참모장 등 1939년까지 중국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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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중국 광저우 동산백원을 임시정부의 임시청사로 제공하고, 아세아 여관을 임시정부 요인 및 가족들의 숙소로 활용하는 데 기여하는 등 임시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1940년 광복군에 합류해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후방에서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44년 광복군 제1지대장을 맡는 등 전면에 나서 광복군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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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군 제1지대원 모습. 채원개 선생이 지대장을 맡았다. 보훈처 제공 |
광복 후 광복군 제1지대를 이끌고 귀국하려 했으나, 미 군정이 광복군의 입국을 거절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만을 허락해 부대를 해체하고 부하들을 먼저 귀국시킨 뒤 이듬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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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이후 제3여단장, 제2사단장을 역임했고 1949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1974년 2월 16일 서울에서 병사했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요약
1.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
2. 1919년 도만하여 독립단에 가입, 독립군 일개중대을 급편성하여 압록강연안에서 10여차의 유격전 전개
3. 1920년 상해에서의 국민대표대회에 남만총의부와 천마대대표로 참가.
4. 1924년 중국직봉전시 오용학군에 파견되어 참전
5. 1925년 상해 임정 의정원 의원에 피선
6. 1925년 대통령 이승만 탄핵재판심의위원에 피선(조선민족운동연감 P. 194)
7. 1926. 주만참의부 군무부장에 전임
8. 1928. 중국 황포군관학교에 파견 학생대장급 유학생감독 겸임
9. 1931. 중국육군 제2사 교도대장으로 강서초공작전에 참가
10. 1933 중국육군독립 제14사단참모장으로 19로군 상해 항일전에 참전
11. 1937. 상해 남경방위전에 참가 광동전 참가
12. 1938. 중국 제4로군에 예직 광동방위전에 참가(임정 공보처)
13. 1940 한국광복군 참모처장에 피임(한국독립운동사 P. 357, 358)
14. 1944. 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활동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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