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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대조영 연호 '천통天統' 담긴 천통십년명불상의 메시지

‘천통10년(天統十年)’의 기년명(紀年銘)이 있는 불상의 천통(天統)은 아버지 대중상과 함께 발해 건국의 기초를 닦은 황제 대조영의 연호다. 대조영은 21년동안 재위했으니 천통10년은 대진국(발해)에만 해당되며 이는 『환단고기』의 기록이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은 정명호(鄭明鎬) 前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의 <천통십년동제여래입상天統十年銅製如來立像에 대한 고찰考察> 논문에서 발췌 정리하였다. 

<천통십년동제여래입상天統十年銅製如來立像에 '천통십년'이라고 쓰여 있다>. 

☞본 불상은 전체 높이가 29cm, 상고(像高) 14.2, 그리고 좌대(座臺)의 직경이 10cm, 광배(光背)의 높이 19cm, 光 背의 폭 12.2cm에 이르는 상(像)이다. 주조한 이후 도금을 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으며, 유심히 살펴보면, 재질은 청동(Bronze)보다도 거의 홍동(Copper)에 가까운 붉은 색을 띠고 있다

☞필자는 이 천통(天統) 10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불상이 일본의 소장자가 적어도 1934년 이전부터 소장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 유물은 그의 집안에 소장되어 왔었지만, 새로 이 유물을 나무 상자에 옮겨 보관하면서 상자 바닥에 깔아두었던 당시의 1934년 신문지가 지금도 그대로 상자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天統十年/十二月二十/五日佛祖/一尊供養’

☞2016년 4월 중순경 필자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평소 지면이 있던 지인 고씨(高氏)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에서 오랫 동안 생활해 온 재일교포로서, 그의 선대는 일제시대까지도 한국의 저명한 대부호가였다. 그는 일본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여 일본에서도 정착하였다. 그의 집안은 오래 동안 고미술품들을 수집, 소장해 왔으며, 그중 일부는 그에게까지 전수되었다. 현재 리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유명한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는 그의 집안에서 나왔으며, 그가 일본에서 표구하여 오래 동안 소장해오다, 고 이병철 회장의 청으로 양도한 작품이다. 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때 直谷山房이라 고 명기된 大院君의 墨蘭 12폭 병풍도 함께 이병철씨에게 양도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天統年號를 사용한 문헌 자료는 네 곳>

☞최초로 사용한 것은 북위시대에 河間人 邢杲가 梁 武帝 7년인 대통(大統) 2년(528)에 반기를 들고 한(漢)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천통(天統)이라고 건원(建元)하였다는 기록이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에 보인다. 한왕(漢王)은 천통天統 연호를 528~529년 까지 2년간 사용하였다고 하나, 실은 불과 1년가량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이 “천통십년天統十年” 의 연호는 불상의 양식과는 상관없이 邢杲의 연호일 수 없음이 자명하다

두 번째 이 천통(天統_ 연호가 사용된 시기는 북위(北齊)의 후주(後主)인 高緯가 이 연호를 565~569로, 이 연호 역시 본 불상에 채택된 연호와는 무관함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이 연호를 사용한 것은 원나라 말기에 사천성四川省 지방에서 명왕진(明王珍)이 세운 하夏나라인 명하(明夏)로서, 이 연호를 1363~1366년에 걸쳐 4년간을 사용하였다. 중국에서 이 연호를 사용한 나라는 이 세 국가 혹은 정권 이외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위의 세 국가 혹은 정권에서 채택 된 천통 연호는 모두 그 존속 기간이 5년을 상회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가운데 어떤 연호도 “天統十年”이라는 기년(紀年)의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 불상의 편년을 둘러싸고 고심하는 중에, 언뜻 몇 년 전에 우연히 보았던 『환단고기桓檀古記』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천통(天統)”이라는 연호를 보았다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가에 오래 동안 보지 않고 꽂혀있던 이 책을 다시 펼쳐 확인해 본 바, 천통(天統)이라는 연호가 이 책 에 발해(渤海)의 창업주(創業主)인 대조영(大祚榮)의 연호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天統十年」 十二月卄」 五日佛祖」 一尊供奉」

즉 명문은 이 불상이 천통(天統) 10년 12월 25일에 제작되어 봉공하는 불조(佛祖)(석가모니불)라는 내용이다. 이 간략한 조상기(造像記)는 중국의 역대 천통(天統) 연호의 어느 연대에도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천통天統” 연호는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 발해의 연호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물론 『구당서』나 『신당서』 등 중국 사서에서도 이 천통(天統)이라는 연호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어디에 근거하였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 연호가 발해 대조영(大祚榮)의 연호임을 기록해 두고 있다.

☞『桓檀古記』에는 신구 양 『당서唐書』에 나타나지 않는 대중상(大仲象)과 대조영(大祚榮)의 두 연호를 기록하여 “稱國後高句麗 建元重光”, “國號定爲大震 年號曰天統”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 ‘천통10년(天統十年)’의 기년명(紀年銘)이 있는 불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주지하다시피 대조영은 2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위에 있었고, 천통연호는 따라서 21년 동안 사용되었다고 기록한 『환단고기』의 기록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정명호(鄭明鎬) 前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서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천통십년동제여래입상의 의미를 풀어나갔다. 천통 연호는 오직 환단고기,규원사화 등 지금 주류학계가 위서로 몰아넣는 역사서에서만 존재한다. 이는 환단고기의 가치규명에 중요한 유물이다. 주류학계는 이에 대해 무시하고 침묵하는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비판하기를 바란다. 거짓으로 쌓은 탑은 언젠가 무너진다.  역사가 사실을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고] 건흥5년명 금동불광배는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담긴 장수태왕의 연호 '건흥'을 알려주고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청주국립박물관] 건흥5년명 금동불광배는 고구려 장수왕 5년의 유물 입증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28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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