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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을 꼽으라면 클레오파트라이지 않을까! 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마지막 파라오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진 여인이며, 로마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와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를 매혹시킨 여성으로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두 사람을 자기의 뜻대로 조종했던 여인이다. 

(참고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트로이다. Cleopatra VII Philopator)

지금의 기록으로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 정말 미인이었는지, 어땠는지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17세기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죽을 때까지 미완으로 남긴 그의 철학서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 (“The nose of Cleopatra: if it has been a shorter, the whole face of the earth would have changed,”) 라고 하였다. 

우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정확한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만약 미인이 아니었다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그 후 악티움 해전도 없었을 것이고, 로마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더 오래 유지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문화여행] 시리즈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죽음에 이어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관해서 소개하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불로장생을 꿈꾸며,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살고 싶어한다. 클레오파트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꿀과 우유로 목욕을 하며 불로장생을 꿈꾸었고,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평생 유지하는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동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잠든 후에도 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고통없이 편안히 죽는 방법 또한 알고 싶었했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직접 실험을 하게 되는데. 죄를 지은 사형수들을 모아 자신의 주치의로 하여금 독약을 투여하게 하였으며, 여러 독약 가운데 어떤 독약이 고통없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는지 관찰을 하였다.

(지금도 그녀가 죽은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그녀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위의 그림은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작품으로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실험하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 Testing Poisons on Condemned Prisoners)'라는 작품이다.

그림 왼편을 보면, 독약 실험 후 죽은 시체가 늘어져서 들려나가고 있으며, 그 왼편에는 독약이 몸에 퍼져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목격했지만, 독약 실험을 명령한 당사자라서 그런지 클레오파트라는 무표정한 얼굴과 실험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잠든 후에도 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고통없이 편안히 죽는 방법을 찾은 이유가 사실 이집트의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벗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여행으로 생각했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영혼이 편안히 쉴 안식처인 육체는 미라로 만들었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아름다운 영혼의 여행을 위해 독약 실험은 꾸준히 진행되었고, 그 결과 효과가 빠른 독약은 고통이 심하고 육체는 추하게 변화해 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효과가 느린 독약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육체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지식을 갖게 된 그녀는 결국 어떠한 죽음을 선택했을까? 

클레오파트라를 연구한 많은 역사가들은 그녀가 신속하고 확실한 독성을 지닌 독사에 물려서 자살을 했을꺼라 주장하고 있지만, 한가지 의문이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곳에 그녀의 하인인 이라스와 샤르미온이 함께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독사는 첫번째 공격이 가장 위험하고, 그 다음 공격에서는 독액이 거의 소모되어 위험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3명이 함께 독사에 물려서 죽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그 당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소식을 듣고, 방 안을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독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스트라본(Strabo)은 그녀가 머리핀에 독액을 발랐을 수 있다고 했으나, 머리핀은 현장에서 발견이 되지 않았고, 플루타르코스(Lucius Mestrius Plutarchus)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모른다. (what really took place is known to no one.)"고 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죽음의 방법을 실험하고 연구하였기에, 또 다른 방법으로 유독가스로 인한 죽음의 과정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혹자들은 독사나 머리핀에 독을 바르고 자살한게 아니라면 탄(炭)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로 인해 그녀가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에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고, 다만 추측을 할 뿐이다. 로마의 가장 위대한 영웅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고 39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살펴봤다.

오늘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의 부분만 다루다보니, 그녀의 삶의 내용은 많이 다루지 못하였다. 다음 기회를 통해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역사를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 : https://www.history.com/news/10-little-known-facts-about-cleopatra)

 

현오 기자  yanogu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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