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시시대 유물들 가운데는 여러 가지 무늬와 색칠로 장식한 질그릇 그리고 진흙 혹은 뼈, 돌로 만든 인형과 짐승조각들, 뼈피리, 치레품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우리나라 미술이 오랜 발전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고조선 시대에 이르러 이미 비파형 단검, 잔줄무늬거울, 금동 말관자를 비롯한 수레부속품들, 금 띠고리, 옻칠그릇 등 세련된 공예품들을 비롯하여 우수한 미술작품들을 창조한 우리나라 미술은 삼국시기에 이르러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훌륭한 민족적 특성을 나타냈으며 멀리 외국에까지 전파되어 이름을 떨쳤다.
고구려의 화가 담징, 백제의 화가 양귀문 등 많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장공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이 나라 미술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 있는 법륭사의 벽화들, 나무공예 《옥충주자》, 조각 《백제관음》, 광륭사의 조각 《미륵반가사유상》, 중궁사의 수예품 《천수국수장》 등은 우리나라 미술가들의 높은 예술적 재능과 그들이 일본 미술발전에 준 영향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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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광륭사에 있는 목조미륵반가상, 이미지=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삼국시기의 미술은 그 이후 발해, 고려시기 미술발전을 위한 토대로 되었다. 상경의 돌등, 정혜공주무덤에서 나온 돌사자, 《삼색도기》와 사기들, 칠물을 바른 기와와 벽돌, 공예품 등은 발해미술의 발전정도와 특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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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목단강시 발해박물관에 있는 발해 삼채 도자기, 이미지=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고려시기에는 색과 문양, 모양이 특출하여 세상 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고려자기를 만들어 우리나라의 이름을 온 세상에 떨쳤다. 고려시기에는 오동향로, 놋거울 등을 비롯한 금속공예와 자개박이 옻칠공예, 왕골공예, 부채공예 등도 높이 발전하였다. 고려의 화가 혜허가 그린 《관음도》는 고려시기 회화의 형상수준을 잘 보여주며 《예성강 풍경》을 그린 12세기의 화가 이녕이 송나라 왕의 초청에 의하여 그 나라 한림원 미술가들에게 자기의 우수한 화법을 배워준 사실은 외국에 준 고려회화의 영향에 대하여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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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센소지에 있는 혜허의 수월관음도, 출처=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조선시기에는 초상화, 산수화, 화조화, 동물화, 사군자 등이 독자적인 회화종류로 발전하였으며 주관주의적 미술조류인 《문인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5세기의 화가 안견의 《꿈에 본 도원》, 이상좌의 《달밤에 소나무 밑을 거닐며》, 16세기의 조선화 《산과 물을 다스리다》, 리암의 《고양이와 강아지》, 18세기의 《농민생활도》, 정선의 《반석》, 《옹천의 파도》, 19세기 장승업의 《연못가의 물촉새》, 우진호의 《농민생활도》, 판화 《평양성도》 등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회화유산들의 일부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화의 힘있고 아름다운 화법적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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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덴리대학 도서관에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출처=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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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박물관 소장 이암의 화조묘구도, 출처=남북역사교류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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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업의 연못가의 물촉새 그림이 있는 북한 우표세트, 출처=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노동계급적 입장에서 일제 식민지 통치의 본질과 가혹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제 현상을 폭로한 만화, 선전화를 비롯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 출처=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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