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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동방의 비너스는 말한다 -자기모순을 범하면서도 학맥을 고집하는 것은 과학도 논리도 아니다

1980년대 중국 요령성 서쪽 조양시 부근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황하문명보다 1천년 앞선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혹스러웠던 것은 황하문명이 요하문명의 지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입버릇처럼 동이족을 변방민족인 야만족이라고 비하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난처하게 했다.

 더구나 요하는 만주 쪽의 변방으로 중국문화와는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고, 이곳에서 출토된 여신(女神)상은 모계사회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부계사회의 유적이 아닌 동이족의 것이었다.

 특히 출토된 여신상의 방사능 탄소측정결과 5500년의 것임이 드러나자 중국사학계는 더욱 흥분하게 된다. 그들은 경이로운 이 여신을 ‘동방의 비너스’라고 명명하면서 중국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게 된다. 중국역사를 천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요했다. 홍산문화를 중국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해괴한 각본을 짜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다민족역사관’이란 이론을 내세운다. 즉, 중국 땅에 있었던 역사는 모두 중국역사라는 궤변이다. 이른바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역사조작의 전말이 바로 홍산문화의 중국역사 편입에 있었다. 자국의 역사, 문화가 세계 최고(最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주요 유적들을 보면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동검, 적석총 등으로 이는 전형적인 동이족의 것이었다. 또한 종교의식으로서 제단이 분류되어 하늘에 제사 지낸 원형제단과 땅에 제사를 지낸 방형제단이 발굴됨으로써 동이족의 원시종교형태 그대로였다. 특히 여신묘는 적석총으로 아(亞)자형의 신전과 건축물이 용과 새의 진흙상으로 다신숭배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무덤도 동이족의 장례흔적인 돌널무덤으로 순장(殉葬)의 흔적도 볼 수 있어 고대국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돌무덤은 중국이 땅을 파서 매장하는 토광묘와는 전혀 다른 묘제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중국이 물경 3조원의 거금을 투자한 동북공정의 목적은 홍산문화가 동이족문화로 밝혔졌음에도 중국역사로 강제 편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어 하가점 하층문화가 발굴되어지고 그 자리가 고조선의 자리였으며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적석총이 다시 발견됨으로써 그 내용들이 기존의 홍산문화와 일치함으로써 중국사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고조선의 유적임을 인정했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탄소측정결과 부장품들이 BC 2200년경으로 고조선의 연대와 동일하다. 하가점은 고조선의 실체를 결정적으로 밝혔다. 특히 고대국가의 성립요건으로 거대한 방어시설, 사통팔달의 도로망, 대형궁전과 무덤, 청동기문화 유적들이 그대로 발굴되었다.
 
 또한 순장풍습과 심지어 순생(짐승의 순장)도 확인되었다. 성벽축조방법도 후대 삼국시대와 비슷해 이제 고조선의 실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졌고 홍산문화보다 약 800년 후대의 나라로 밝혀졌다.

 아울러 인골의 특성도 머리길이가 짧고 높이가 매우 높은 한국인의 것과 같다. 특히 머리뼈가 높은 것은 구석기시대부터 지금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조선의 실증이 중국사학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인정됨으로써 고조선에 대한 논란은 이제 끝이 난 셈이다.

 아직도 이병도를 따르는 강단학파들은 고조선을 부인하고 있다. 가장 과학적이라는 탄소측정으로 밝혀진 연대도 부정하는 자기모순을 범하면서도 학맥을 고집하는 것은 과학도 논리도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난센스일 뿐이다. 하루빨리 고조선의 정치(精緻)한 부활을 기대한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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