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history 독립운동사
『최성주의 봉오동전투 이야기』 들어가며

올해는 봉오동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만행과 폭거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애국지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은 논할 여지가 없다 하겠습니다.

누군가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역사의 왜곡은 생겨나게 되고 그러한 잘 못 알려진 사실들이 결국 역사의 진실이 되어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10회에 걸쳐 연재될 『최성주의 봉오동전투 이야기』 내용은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의 최성주 이사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한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봉오동전투에 관련하여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잘 못 알고 있는 내용과 함께 봉오동전투의 보다 핵심적인 사실과 내용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이 연재 글과 함께 이 나라 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 그리고 애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에 역사 광복을 통해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무장독립군기지 봉오동과 봉오동전투 재조명

 

최성주 (최운산기념사업회 이사 /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1. 들어가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횃불이라고 불리는 “봉오동전투”는 일반적으로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이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홍범도는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부대 <大韓北路督軍府>의 여러 연대장 중의 한 명이었다.

대한북로독군부는 여러 독립군부대가 통합한 대규모 통합군단이고, 총사령관 大韓北路督軍府將은 최진동이다. 동생 최운산이 통합부대 창설에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내어놓았다. 또한 최운산이 1912년 봉오동에 창설한 사병부대가 모체가 되어 창설했던 대규모 정예부대 <大韓軍務都督府대한군무도독부>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의 중심에 있었기에 독립군 통합군단은 일본의 정규군에 밀리지 않는 전투력으로 봉오동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무장독립운동사』의 저자 이강훈은 최운산 장군의 활동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군무도독부는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가 왕청현 봉오동을 근거지로 하고 풍부한 경제력을 선용하여, 거의 개인적 힘으로 양성한 수백명의 사병 최운산이 1912년 창설한 자위부대 <도독부>를 모체로 창설한 독립군부대 <대한군무도독부>을 기간으로 일개 전투군단 간도의 모든 독립군부대가 연합한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을 편성하였으며, 최진동 사령관과 그의 동생들의 참모와 경제적 뒷받침 간도 제1의 거부 최운산이 <대한북로독군부> 운영 군자금을 제공으로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봉오동전투에서 흉적 일본군에게 대 타격을 줌으로써 독립전사에 불후의 이름을 남긴 기관으로 되었다.” 『무장독립운동사』p67 이강훈, 서문당, 1975.
 
....... 
“일찌기 정착하여 생활기반을 굳혀 놓고 그 토대 위에서 독립 전쟁의 장비며 군량 등을 보급하여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한 최진동의 동생 최운산과 최치흥 등 3형제의 업적은 봉오동전투 등을 비롯하여 당시(경신년) 대일 항전에 절대적으로 이바지하였다.”『무장독립운동사』p84 이강훈, 서문당, 1975.

 
그러나 이런 기록과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들 중에서도 최진동(명록, 희), 최운산(명길, 문무, 만익, 풍...), 최치흥(명순, 흥) 3형제가 주동이 되어 봉오동에 <大韓軍務都督府대한군무도독부>와 <北路軍政署북로군정서>, 그리고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니, 이 사실을 아는 학자들조차도 홍범도가 봉오동 전투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무장독립군부대가 ‘대한군무도독부’의 근거지인 봉오동에 머물렀고, 최운산으로부터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수품을 지원받는 입장이라 예의상 최진동이 총사령관을 맡았을 것이라고 낮추어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만주 무장독립전쟁사 특히 봉오동전투와 그 배경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부족했던 탓이다. 밝히고 드러내지 않는 역사는 모든 사라진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후손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통감하였다.

황무지였던 봉오동을 개간하고 무장독립군기지로 개발해 나간 최운산 일가의 삶을 기록한 역사적 자료와 한국의 근현대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가족사를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진 최운산장군의 삶과 업적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만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