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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서편 만발발자 원구단은 배달국 초기 제단 유적

1980년대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이래 요서지역은 중국문화의 발원지이자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발원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1990년대 중국측은 10여년에 걸쳐 요동지역 특히 백두산 서편 통화(通化)지역을 중심으로 맥족의 옛 제단군을 조사·발굴했다.

만발발자(万发拨子) 유적

만발발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통화通化시 동창구东昌区의 금광진(金厂镇)에 위치한다.  혼강(渾江)의 동남쪽 기슭에 작은 구릉이 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한 마리의 자라가 목을 늘어 빼고 물을 마시는 모습 같아 이곳 사람들이 ‘왕팔발자(王八脖子)’라 불렀다. 유적지 또한 왕팔발자 유적, 신별(神鱉) 문화로 불리었는데 후에 문화재 당국에서 “만발발자(万发拨子) ”라 그 이름을 바꾸었다. 

“신별”의 발견은 중국 고고학계의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소병기(蘇秉琦) 교수는, “이는 대문화(大文化)이며 대문물(大文物, 大文化財)이며 대발견이며 나라(邑)의 성격을 모두 갖춘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국사회과학원 유진상(劉晋祥)과 주연평(朱延平) 등 전문가들은 “이러한 종류의 유적지 그 자체가 결코 일반적인 취락(聚落)이 아니며 이는 일종의 의례(儀禮)와 관련된 건축물이다.”라고 하였다. 

백두산 서편 적석단총군의 분포 범위 및 중심지 통화지역 (출처 : 동북아고대역사 채널)

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56년에 길림성 문화국에 의해서이다. 1996년에 중국 국가문화재국에서 발굴을 위한 계획을 비준하였고 1997년~1999년에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에서 3년에 걸친 발굴 조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옛 제단군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키다가 1999년 통화 만발발자(萬發撥子)제단 발굴을 마지막으로 돌연 옛 제단 유적들을 은폐하고 관련연구를 모두 폐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2014년 구글어스, 2014년 1월 28일.(검색일: 2018년 9월 10일) 출처 : 정경희 교수 논문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통해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

요서 대릉하 우하량 일대 적석 단총에 나타난 ‘3층원단·방대’ 방식은 요동 백두산 서평 통화지역에서 먼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통화 만발발자 옛 제단의 시기는 우하량 보다 500년 정도 앞서는 B.C. 4000년~B.C.3500년 경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3층원단・방대’ 형태는 요서 우하량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요동 백두산 서편 지역에서 시작되어 요서 우하량 일대로 전해졌음을 시사한다. 

(출처 : 동북아고대역사 채널)

결정적인 건 만발발자 옛 제단의 2차 제천시설인 ‘선돌 2주·적석 방단·제천사’가 요동·요서·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적석단·나무솟대·제천사·선돌·고인돌류)’계통으로 중원 지역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형태라는 점이다. 이는 중국 측의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오류를 넘어 동북아 상고문화의 기원과 계승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만발발자 유적은 B.C. 4000년~B.C.600년 무렵, 즉 배달국~고구려 시기 한민족의 주족인 맥족계의 선도제천문화가 성립·변천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꼽힌다. 제천시설 중 1차 제천시설인 ‘3층 원단·방대’의 형태와 여기서 출토된 곰소조상은 요서 우하량에서도 발견된다.

백두산 서편 일대, 특히 통화 지역 옛 제단군 문제가 한국 상고・고대사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관건이며, 백두산 서편 일대에서 후기 신석기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맥족의 오랜 제천 문화의 실상을 확인함으로써 한국 상고・고대문화의 요체인 제천 문화의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내용은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책과 정경희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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