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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독립운동가 김교헌’ 온라인 학술세미나 개최

화성시(시장 서철모)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화성시 매송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무원 김교헌’ 선생의 삶과 활동을 돌아보는 온라인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고 17일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된 이번 학술세미나에서는 100년 전 만주지역의 열악했던 독립운동의 실상과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교헌 선생과 그 가족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날 학술세미나는 김교헌의 생애와 항일독립운동(이숙화, 한국외대), 일제강점기 김정기의 삶과 항일운동(성공회대 전명혁), 만주 독립운동사를 통해본 김교헌의 역할과 의미(원광대 김주용), 김교헌의 대종교 관련 저술활동(독립기념관, 김도형), 김교헌의 신교사관, 남북조사관에 대한 고찰(국학연구원, 김동환) 순으로 진행됐다.
 

김교헌(1868-1923) 선생은 대종교의 제2대 교주이며  ‘대한독립선언문’의 첫 줄에 이름이 올라간 독립운동가이다.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지였던 만주지역에서 젊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좌진 장군을 배후에서 전력 지원했던 대표적인 군사전략가이자 독립운동가다.

김교헌 선생은 당시 서울 사대문 안에 방만 340칸이 있을 정도의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독립운동을 결심한 뒤 모든 전답을 팔아 만주 독립운동에 바친 이 시대의 진정한‘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도 했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만민공동회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09년 이후로 대종교에 가입하였고, 1909년에는 규장각부제학, 1910년에는 가선대부를 지냈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2대 대종교 지도자가 되었다. 1918년 12월에는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1920년의 청산리 전투에 기여하였다.  1923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화성시는 100년 전 3.1만세운동과 시민 독립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펼쳐졌던 항일운동의 중심지로서 현재까지도 많은 독립운동의 흔적들과 후손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앞으로도 숨은 영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조명하는 노력을 지속해갈 예정이다.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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