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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붙인 문배도는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설 연휴 첫날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이 그려진 문배도가 걸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는  11일부터 14일까지 코로나19 극복 기원의 의미가 담긴 문배도를 광화문에 부착했다.

광화문에 붙은 문배도 (사진 = 한문화타임즈)

 광화문 ‘문배도’ 부착은 연초 액과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조선 시대 세시풍속에서 기반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기획됐다.

'문배'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의미로 그림을 붙이는 풍속을 말하고 문배도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담아 문에 붙이는 그림이다.  제작은 도화서에서 담당하였으며 조선 후기 이후 민간 풍속으로 퍼져나갔다.

‘문배’에 관한 기록은 그동안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육전조례’ 등에 수록돼 있었지만, 그 도상의 실체를 명확히 알수는 없었다.

그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5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미국 워싱턴 D.C. 소재) 복원·재현 과정 중 미국 의회도서관 이 소장한 경복궁 광화문 사진을 발굴함에 따라 광화문에 붙인 문배도의 구체적인 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잡지 데모레스트 패밀리 매거진 1893년 7월호에 실린 미국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사진(위쪽 사진). 북쪽 벽에 태극기와 함께 구한말에 촬영한 광화문 사진이 걸려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조선 시대 경복궁 광화문에 붙여진 문배도.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신도와 울루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광화문에 만들어 붙인다고 한 금갑장군金甲將軍 문배도門排圖란 실은 신다(신도)와 울루다.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여전히 새해가 되면 문에 신도·울루상을 붙이고 한 해 액막이를 한다

중국 또는 대만에서 대문에 신도울루를 그려 놓거나 글씨를 써 붙인다. (출처 : 오동석의 인문여행)

신도,울루의 유래는 멀리 탁록대전까지도 올라간다. 탁록대전은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이 중국 탁록에서 10년간 73번 전쟁을 했는데 치우천왕이 전승을 했던 대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귀신을 부리는 황제헌원은 귀신부대를 동원했고 도깨비 왕이었던 치우천황은 도깨비 부대를 운영했다. 황제는 곤륜산 근처에서 우연히 백택이라는 동물을 만났는데 호랑이를 잡아 먹고 살며 사람의 말을 잘했다. 황제는 그 백택이 알고 있는 귀신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는데 귀신의 종류가 11,500개가 넘었다. 치우천황은 이매, 망량, 신도, 울루와 같은 도깨비를 동원했다. 10년간 73번 싸우는 탁록전쟁에서 신통한 도깨비들이 귀신들을 항상 이겼기 때문에 도깨비는 항상 귀신을 이기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전통이 도깨비를 부적처럼 오늘 날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은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의 시조가 되어 수천 년 동안 동방의 조선족은 물론 중국 한족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금살치우'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동북아 역사와 문명의 뿌리를 황제 헌원으로 조작하고, '중국이 천자국으로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민족은 모두 야만족' 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결국 치우천황의 수하에 있던 신다와 울루의 경우도 황제의 부하로 둔갑하여 전해지게 된 것이다.  《논형論衡》이 인용한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도 마찬가지다. 

滄海之中 , 有度朔之山 , 上有大桃木 , 其屈蟠三千里 , 其枝間東北曰鬼門, 萬鬼所出入也. 上有二人 , 一曰神荼, 一曰鬱壘, 主閱領萬鬼. 惡害之鬼, 執以葦索, 而以食虎. 於是黃帝乃作禮, 以時驅之, 立大桃人, 門戶畫神荼·鬱壘與虎, 懸葦索, 以禦兇魅.  “창해滄海에 도삭度朔이라는 산이 있고 그 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자라는데 그 가지는 3천리를 뻗친다. 그 가지 동북쪽을 귀문鬼門이라 하는데, 온갖 귀신이 출입하는 데다. 거기에 두 사람이 있어 한 사람은 신다神荼라 하고 다른 사람은 울루鬱壘라 하니 이들이 온갖 귀신을 감시한다. 해악을 끼치는 귀신은 붙잡아서 줄로 묶어 호랑이한테 먹이로 던져준다. 이에 황제黃帝가 이를 법도로 만들어 때마다 그들을 좇아버리니 큰 복숭아나무를 세우고 문에는 신다와 울루 그림을 호랑이 그림과 함께 붙이고 새끼줄을 매달아 흉악한 귀신[兇魅]들을 감시한다.” 

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 풍습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이런 풍습을 유지하더라도 제대로 역사와 유래를 알고 실천해야할 것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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