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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의 아버지와 온달 장군의 북주 정벌 무대는 어디일까온달 장군의 역사적 전투 무대는 갈석산, 배찰산 그리고 유림관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2월 15일  첫 방송된 '달이 뜨는 강'은 고구려가 삶의 전부였던 공주 '평강(김소현)', 사랑을 역사로 만든 장군 '온달(지수)' 운명에 굴하지 않은 그들의 순애보를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아야 하지만 여기에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삼국사기 온달전』에 나온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 뒤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명문귀족 집안에 시집보내려 하였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하여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하여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수도로 돌아오던 중 죽었는데,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에는 온달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時, 後周武帝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擊大克.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策一.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由此, 寵榮尤渥, 威權日盛.

이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을 공격하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의 들판(拜山之野)에서 맞아 싸웠다. 그 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공을 논의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작위를 주어 대형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그에 대한 왕의 은총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위풍과 권세가 날로 성하여졌다.

 온달이 전투를 벌인 장소는 삼국사기에는 배산지야(拜山之野)라고 나온다. 이곳은 어디일까?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는 이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는 온달이 북주와 싸웠던 기록을 단순히 배산들(拜山之野)이라고 했는데환단고기는 갈석산과 배찰산이라고 명시했고, 더 나아가 이 전투의 결과로 고구려가 유림관 동쪽을 모두 차지했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온달 장군이 갈석산과 배찰산을 지나 유림관까지 북위를 추격하여 대파하였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바이두 배찰산 검색

平岡上好太烈帝 有膽力 善騎射 乃有朱蒙之風 改元大德 治敎休明
大德十八年丙申 帝率大將溫達 往討碣石山 拜察山 追至楡林關 大破北周
楡林鎭印悉平 楡林 今山西境 (태백일사 고구려본기)

평강상호태열제는 담력이 있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주몽의 기풍을 닮았는데 연호를 대덕이라 고치고 나라를 다스림과 가르침이 아주 밝았다. 대덕 18년 병신에 평강상호태열제가 대장 온달을 거느리고 갈석산, 배찰산을 치고 추격하여 유림관에 이르러 북주를 크게 깨뜨리셨다. 이로써 유림진 동쪽이 모두 평정되었다. 유림은 지금의 산서 경계이다. (태백일사 고구려본기)

산서성

산서성 경계에 있는 유림 동쪽까지를 평정하였다고 한다. 대략 위치가 가늠이 된다.

유림관(楡林關)은 산해관(山海關) 서쪽 40里 지점 일명 유관(楡關)으로...대저 번융(蕃戎)을 제(制)하여 요해(要害)에 웅거한 것이 실로 유주(幽州)와 평주(平州)사이의 천험(天險)이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유림관(楡林關)은 일명 유관(楡關)으로 지금의 산해관(山海關)이라고 보면 된다.

유관(楡關) 바로 아래 산해관이 보인다.

배찰산(拜察山)은 배산,백분산白岔山이라고도 하고 음산산맥에 있으며 몽고의 차할부의 경계에 있다 (계연수 설), 배찰산은 열하성 경붕현 경계에 있었다( 중문대사전). 경붕현은 극십극등기로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내몽골 자치구이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주석 글)

又名白岔山。或作奔盏山。蒙古语意为神山。在今河北围场满族蒙古族自治县、隆化县与内蒙古喀喇沁旗交界处。为西辽河上游西拉木伦河源地。(바이두 拜察山 검색)

현재 구글 지도로 보면 지도의 부분의 동쪽까지 전투의 결과 차지한 것으로 나온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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