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을 합방한 것은 한마디로 ‘한’민족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최고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는 군통수권까지 장악해 조선총독은 오직 천황에게만 책임을 질 뿐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다.
일본인의 야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일본자객들이 궁궐에 난입하는 천인공노할 ‘여우사냥’이다. 자객들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유해를 불태웠다. 세계 어느 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악랄한 만행이었다.
더구나 이 사건의 주범이 일본공사 미우라라는 사실은 치를 떨게 한다. 황후의 장례는 2년을 넘게 치러지지 못하다가 몇몇 옷가지를 수습해 입관하고 역사상 가장 슬프고도 긴 국상을 보냈다.
그를 시해한 칼은 일본 쿠시다 신사에 지금도 보물인양 전시되고 있다. 시해 직전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칼집에 새겨놓은 명문이 ‘히젠토’이다. ‘조선의 심장을 찔렀다’는 의미라 하니 말문이 막힌다.
일본인은 조선의 황후도 사람이 아닌 여우로 보았다. 그렇다면 조선 평민들은 말할 여지도 없어진다. 철저히 도륙해야할 대상일 뿐이다.
조선총독은 식민지지배의 본질인 군사적 점령을 유지하기 위하여 악랄한 헌병 경찰제도를 실시해 조선인의 숨통을 조이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1910년 제정된 조선민사령과 조선형사령 등 법제정은 기본적으로 식민지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잔혹한 악법이었다. 심지어 조선태형령을 만들어 조선인의 볼기를 매로 치는 원시적 형벌도 실시했다.
민족의 맥을 끊기 위해 명산대첩을 돌며 쇠말뚝을 박았으며 흰옷을 입는 것도 막기 위해 장날에는 가는 사람의 옷에다 검은 물을 퍼부었다. 우리말을 못하게 했고 세계사에 유래 없는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일본이름으로 바꾸라는 어처구니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어떤 식민지역사 중에도 이처럼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한 나라는 없었다.
그들이 내건 정치적 구호도 이른바 ‘내선일체’였다. 겉으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이지만 조선을 일본화하고 조선인은 모두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었다. 또한 어린이들도 황국신민에서 차용한 ‘국민’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이처럼 조선을 철저히 난도질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았고 왕실소유지, 문중 토지, 신고 되지 않은 토지 등을 모두 몰수해 조선총독부는 1930년대에 이르러 전국토의 40%를 소유하는 대지주가 되었다.
농민들은 이런 수탈구조 속에서 토지마저 빼앗겨 빈궁과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남부여대하고 타관 땅으로 유리걸식하게 되었다.
또한 ‘한’민족말살이란 악랄한 음모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다. 이에 근거한 학무징용령, 강제징병제, 국민의용병제 등으로 젊은이들은 대동아전쟁의 총알받이로, 늙은이는 보국대로 중국에서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선으로 끌고 갔다.
나이어린 소녀들을 취직시켜준다고 속이거나 보이는 대로 납치하여 일본군의 위안부인 정신대로 끌고 갔다. 관동대지진 때 7천여 명의 조선인대학살이 자행되었고, 세균전 준비를 위해 3천 명의 인체실험을 행한 731부대는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이었다.
우리 상고사 말살을 획책하여 20만권에 달하는 고대 사서를 수탈하여 불 지르고, 고조선을 우리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조선에 있는 고분을 두더지처럼 파헤치고 그 속에 있는 문화재와 보물들을 도굴하여 훔쳐갔다. 일본에 있는 우리문화재는 30만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총독부의 숱한 만행을 부인하며 지금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있다. 아직도 변변한 사과 한마디도 없다. 터무니없게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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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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