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오전 9시 10분께 패혈증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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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에 따르면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44년 17살 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위안부’피해자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하상숙 할머니는 평소 고국을 그리워해, 생의 마지막을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고향 서산에서 보내기를 희망해왔다.
할머니는 1927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예산에서 자랐다. 열일곱 되던 해인 1944년 5월, 일본군‘위안부’ 모집책에 끌려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 한커우 일본군 위안소에 도착했다.
8개월 가까이 매일 일본군에게 고통 받다가 일본 패망 뒤 풀려난, 할머니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우한에 머물렀다. "일본군에게 수치를 당한 몸으로 고향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중국인과 결혼했고, 1962년 방직공장에 취직해 25년을 일했다. 1994년 남편과 사별한 뒤 막내딸과 함께 지내왔다. 한·중 수교 전까지 국적이 없던, 할머니는 1994년 3월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6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처음 귀국했다.
2013년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하상숙 할머니는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이다”라며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못 죽는다”라고 말하는 등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3일 김군자 할머니의 별세와 28일 하상숙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23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강동 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빈소 서울 강동 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 30일.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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