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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김씨金氏 이야기①

“김씨가 한몫 끼지 않은 우물은 없다.”는 속담이 말해 주듯 김씨는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이다. 김씨는 신라계(알지)와 가야계(김수로왕)로 크게 나뉜다. 김씨의 기원에 대해 태고 시절의 소호금천少昊金天씨로부터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김씨의 인구가 10,689,959명으로 조사되었다. 


@김씨의 유래
김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0,689,959명으로 조사되어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김수로왕계의 김해 김씨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김알지계의 신라 김씨 계통이다. 그 외에 우리나라에 귀화한 김씨도 있다. 

김씨의 본관 별 인구 수를 보면 김해 김씨가 445만 6천 명으로 가장 많고, 경주 김씨가 180만 명, 광산 김씨가 92만 6천 명, 김녕 김씨가 57만 7천 명, 안동 김씨가 51만 9천 명이다. 그 외에도 의성 김씨(28만 7천 명), 강릉 김씨(17만 9천 명), 선산 김씨(13만 8천 명) 등이 있다(2015년 인구센서스, 통계청). 

사실 김씨라는 한자 성을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과 만주 등 동아시아 지역에 매우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금金나라의 金이라든지, 중국 성씨 중에 金씨는 우리나라의 김씨와 깊은 연관이 있다. 김씨는 고려 때까지 금金씨로 불렸는데, 음양오행에 따라 이씨 조선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을 염두에 둔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쇠 금이 아닌, 성 김으로 바꿔 불렀다는 설이 있다. 

김수로왕릉의 모습


 
#설화로 보는 김씨의 유래# 
김씨의 탄생 설화는 잘 알려진 대로 『삼국사기』의 김알지 설화(AD 65년)와 『삼국유사』의 김수로 설화(AD 42년)가 있다. 그중 김수로왕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상사일에 구지봉龜旨峰에 이상한 소리로 부르는 기척이 있어 구간九干 등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중략) 구간 등이 구지가龜旨歌를 부르고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색 줄이 드리워 땅에 닿았는데, 줄 끝에는 붉은 폭에 금합金合이 싸여 있어 열어 보니 해와 같이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있었다. 다음 날 새벽에 알 6개가 화하여 사내아이로 되었는데 용모가 매우 깨끗하였다. 이내 평상 위에 앉히고 여러 사람이 축하하는 절을 하고 공경을 다하였다. 그달 보름에 모두 왕위에 올랐다.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諱를 수로首露라 하고 혹은 수릉首陵이라 하였는데, 수로는 대가락大駕洛의 왕이 되고 나머지 5인도 각기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김알지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65년(탈해왕 9년) 8월 4일 왕이 밤에 금성金城(경주) 서쪽 시림始林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호공이 시림 속에서 큰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고 그 빛이 궤에서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어 왕께 아뢰었다. 왕이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이는 박혁거세의 옛 일과 같으므로, 박혁거세를 알지閼智(지혜가 뛰어나 이름을 ‘알지’라고도 함)라 한 선례에 따라 이름 지었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 아기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였다. 왕이 좋은 날을 받아 태자로 책봉하니 그가 곧 김알지이다. 그리고 시림도 계림鷄林으로 고쳐 국호로 삼았다.”


이렇듯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실린 김씨의 유래를 보면, 그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구지봉석(고인돌),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추정
계림鷄林은 경주 김씨 시조의 발상지다(경주시 교동)

 

#금석문金石文이 전하는 김씨의 뿌리#
우리는 금석문을 통해 김씨의 유래에 대해 설화보다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가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의 비문과 추사 김정희가 밝혔다가 200년이 지난 1961년에 우연하게 발견된 문무왕 비문이 그것이다. 

먼저 『삼국사기』에 전하는 김유신 비문에는 #‘김유신이 헌원지예軒轅之裔요 소호지윤小昊之胤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김인문의 비문에도 나와 있다. 또한 중국에서 발견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쪽 교외 궈자탄郭家灘에서 출토된 ‘김씨 비문’에는 #“태상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금천少昊金天씨이다.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의 성씨를 받게 된 세조世祖이시다. (중략) 먼 조상은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서 벼슬을 하였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황제께서)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秺亭侯(투후秺侯)에 봉하시니, 7대에 걸쳐 벼슬하매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중략) 한이 난리가 나서 괴로움에 처하자 멀리 피해 요동遼東에 살게 되었다. (중략)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이하 생략)”#라고 적혀 있다. 

특히 다시 발견된 문무왕 비문의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 비문에는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5행),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신라로 내려왔고’(6행)#라는 구절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문무왕의 15대조 성한왕을 신라 김씨의 시조 대보공 김알지로 추정했다. 투후 김일제는 한 무제 때, 흉노(훈족) 휴도왕의 태자였다가 곽거병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종합하면 신라의 김씨들은 자신들의 내력이 멀리는 소호금천씨(동이족의 성왕, BCE 2598∼BCE 2514)로부터 시작했고 가까이는 흉노의 왕자 김일제에서 김알지로 이어진다고 믿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보88호 금관총요패,  허리띠에 각종 일상 도구를 몸에 달고 다녔던 북방 유목 민족의 유물이다.


이어집니다!

최영철 기자  taeul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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