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나는 전주 김씨' 2000년 정상회담장에서 밝혀
김씨가 많은 이유에 대해 “김씨가 역사에 등장한 지 오래되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김씨보다 먼저 등장한 박朴씨가 김씨보다 훨씬 적은 사실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씨 이전에 고구려·백제의 왕족과 귀족들도 성을 사용했다. 고구려의 왕실의 고高씨와 백제의 여덟 성姓은 현대까지 이어져 오지 못했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김씨 성이 유독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적잖은 수의 귀화인歸化人이 김씨 성을 취한 것이다.
#일본에서 귀화한 김씨들#
김해 김씨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 귀순한 일본군 장수 김충선金忠善을 시조로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사성賜姓 김해 김씨 혹은 우록友鹿 김씨라고 한다.
원래 이름이 사야가沙也可인 김충선은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副將으로 참전했다. 유교적 소양을 갖고 있던 그는 조선의 문물을 흠모해 휘하 병졸 3000명을 데리고 조선에 투항했다. 이후 그는 경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김씨 성과 ‘충선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 하)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귀순한 일본인으로는 김상의金尙義라는 사람도 있다(일본 성명은 전해지지 않음). 김충선이나 김상의에 앞서 귀화한 일본계 김씨들도 있다. 조선 세종 때 귀화한 김호심파金好心波, 성종 때 귀화한 김삼보라사야문金三甫羅沙也文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일본에서 쓰던 이름에 김씨 성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후손도 적지 않겠지만, 일본계 귀화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뿐이다.
![]() |
| 김충선(1571~1642)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 |
#중국에서 귀화한 김씨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것은 여진족에 뿌리를 둔 김씨다. 육진六鎭 개척 당시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귀순 여진족들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관련이 있다. 아골타의 조상은 고려에서 건너간 김함보金函普라고 한다. 어쩌면 여진족들이 귀화하기 이전에 김씨 혹은 그에 해당하는 여진 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다. 여진족을 조상으로 하는 김씨가 없는 것은 후대에 자손들이 모화사상慕華思想 때문에 그들의 출신을 감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우리 주변의 김씨들 중에는 그들의 후예가 적지 않을 것이다.
![]() |
| 금나라 아골타의 계보 |
흥미로운 것은 여진족이 잡거雜居하다가 점차 조선의 영토로 편입된 함경도와 평안도에 유난히 경주 김씨 집성촌集姓村이 많다는 사실이다. 영양英陽 김씨와 태원太原 김씨는 당나라에서 귀화한 김씨다.
조선 초기에 명나라에서 귀화해 온 김씨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나오는 김완귀金完貴, 김용金龍, 김춘산金春山, 김남길金南吉, 김길장金吉狀, 김성金聲, 김융金隆, 김준金俊, 김귀金貴 등이 그들이다.
#북한의 김씨
1960년대 어느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인의 족보』라는 책에는 일제 시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별 집성촌 호수戶數 기록이 나와 있다. 이에 의하면 함경도 지역에 100호가 넘는 경주 김씨 집성촌이 여러 곳 있었다.
집성촌은 대개 일개 면面에 특정 성씨가 수십 호인 것이 보통인데, 함남 영흥군 억기면咸南 永興郡 憶岐面의 경주 김씨 집성촌은 200호가 넘었다.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일원에는 260여 호가 있었다. 평안북도 의주義州와 벽동碧潼에도 경주 김씨가 많이 거주했다. 경주 김씨의 본관이 있는 영남권 못지않은 집성촌이 함경도와 평안도에 많았다.
참고로 북한 김일성金日成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이 “나는 전주 김씨인데, 내 시조 묘소가 전라도에 있다 하니 남조선 방문하면 참배하겠다.”고 해서 알려졌다.
전주 김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 때 재상을 지낸 김태서金台瑞다. 그의 묘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자락에 있다고 한다.
![]() |
| 전주 김씨의 시조묘 |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