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맞서 우리말을 수호하고자 자결로 항거한 항일 투사 신명균 선생(조선어학회 간사장 역임)이 올해 광복절 독립유공 훈장인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선생이 자결로써 일제에 항거한지 77년만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2차에 걸친 공적조서 제출과 재심요구로 포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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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균 선생의 모습 1927년 보성전문학교 졸업앨범 (박용규 발굴) |
이번에 독립유공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신명균 선생은 주시경의 직계제자로 우리말과 글을 수호하는 국어학자로서, 독도(뚝섬)공립보통학교와 동덕여고보에서 교육에 종사한 교육자로서 일생을 보냈다.
신명균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에 맞서 언어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학회(2대 간사장, 3대 간사)에서 조선어 철자법 제정위원으로써 한글 맞춤법통일안 완성에 기여하였고, 표준어 사정위원으로 활동하여 표준어의 제정에 도움을 주었다.
1931년부터 조선어연구회를 모체로 하여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가 발족되자 그 기간회원으로서 활약하였으며, 기관지인 ≪한글≫(1932년 재창간) 등을 통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사업에 앞장을 섰다. 조선어 문법의 통일에 기여하고자 <조선어문법>(1933)을 저술하였으며,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조선 민중에게 널리 소개하고자 하여 <조선어철자법>(1934)을 저술하였다.
아울러 1929년에 출범한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와 함께 조선어학회의 핵심인물이었다.
조선어 말살과 창씨개명 강요에 항거하여 1940년 11월 20일 자결(51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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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김구기념관 2017년 8월 30일 서울지역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 왼쪽은 조선어학회 선열 유족회 신광순 회장. 가운데 두 분 신명균선생 유족. 그리고 박용규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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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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