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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여성독립운동가』 - '전수산'편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대한인부인구제회 회장으로 

                        하와이땅에서 독립을 외친 전수산 지사"
 

        먼 이국땅서 잠든 그대
          극락조화 한 다발 안고 찾아간 날
          무덤 뒤
          다이아몬드헤드산은 빛났고
          와이키키 바다 바람은
          뺨을 간지럽혔다오

          어린 딸 옥희를 안고
          하와이땅 밟은 그대

          억척스레 독립자금 모아
          상해임시정부의 기틀을 잡고
          헐벗은 조국의 애국지사 후손을 도운
          고운 마음 감추고

          이제는 지친 몸 마음 모두 내려놓고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에서
          조국의 무궁함을 비는 그대여!

          독립의 역사 지워지지 않는 한
          그대의 애국혼 영원하리라!
 
         -이윤옥 “전수산 지사를 그리며 –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에서 -”

3살 난 딸 옥희와 함께 하와이 호놀루루항에서 입국비자를 받아든 전수산 지사 (이덕희 소장 제공)

전수산(1898~1969)애국지사가 잠든 호놀루루의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DIAMOND HEAD MEMORIAL PARK)를 찾은 시각은 4월 18일 아침 10시(현지시각)였지만 이미 태양은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다. 봉분이라든가 묘지석이 없는 미국의 공원묘지는 그야말로 하나의 공원(PARK)처럼 평온한 곳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푸른 잔디밭 같지만 자세히 가보면 바닥에 묻힌 사람의 작은 묘지석이 박혀있다. 전수산 지사의 무덤을 찾아가기 위해 하와이에 도착한 날(4월 13일) 외손자인 티모시 최 선생을 만나 무덤의 위치를 알아내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워낙 넓은 곳이라 찾을 길이 없어 무덤 관리소에 들려 위치를 확인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수산전리 (전수산 무덤 표지석에는 남편 이씨 성이 적혀있다)

전수산 지사의 무덤은 남편 이동빈(1898~1947) 선생과 나란히 있었는데 공원묘지의 입구로부터 치면 중간쯤인 섹션 D-79-1과 3에 자리했다. 관리인이 약도에 그려준 위치를 참고하니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 여기가 전수산 지사의 무덤이런가! 공원묘지인지라 주변에 꽃을 파는지 알고 빈손으로 달려갔다가 꽃을 팔고 있지 않아 무덤을 확인하고 다시 차로 십 여분 거리에 있는 마켓으로 달려가 극락조화 한 다발과 이름 모를 하와이의 아름다운 꽃 한 다발을 샀다. 무덤을 향하여 걷는 동안 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났다. 독립의 역사에서 비껴있던 하와이의 독립운동가 전수산 지사의 삶이 순간 강렬한 빛으로 다가섰다. 그 빛을 새기며 필자는 무덤 앞에 마련된 작은 물통 안에 사온 꽃을 정성껏 바치고 큰절을 두 번 올렸다. 두 번의 절 가운데 한번은 먼 이국땅 하와이에 건너와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 상해임시정부와 조국의 애국지사 후손들을 돕고자 뛴 전수산 지사에게 올리는 절이요, 또 한 번의 절은 전수산 애국지사처럼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숨져간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 분도 빠짐없이 세상에 알리겠다는 각오의 마음이었다.

전수산 지사는 평양출신으로 1916년에 건너갔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공채를 발행하게 되자 전수산 지사는 당시 돈으로 15불 상당의 공채를 매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이어 1919년 4월 1일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창립된 하와이 부인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를 돕는데 앞장섰다.

“전수산 할머니는 매우 활동적인 분이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로 기억하는데 저에게는 이모님이 되는 두 딸에게 한국의 민속춤과 장구 치는 법들을 가르쳐서 한인의 날 등의 행사에서 춤을 추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던 할머니는 이모와 어머니 등 여성들이 자립적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쳤으며 당신이 솔선수범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할머니의 독립운동은 명예나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빛도 없이 음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신 할머니의 삶을 존경하며 그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습니다.”

전수산 지사의 외손자인 티모시 최 선생(왼쪽), 가운데가 필자, 하와이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오른쪽)

4월 13일 오후 2시, 전수산 지사의 외손자인 티모시 최 (75살) 선생을 만난 것은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였다. 하와이로 가기 전 한국에서 대담 요청을 했더니 8개월 전 허리 수술을 해서 면담은 극히 짧은 시간만 가능하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의의로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뻤다. 약속 장소인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티모시 최 선생은 지팡이를 짚은 채로 벌써 도착하여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수산 지사님은 뭐라고 할까요? 굉장히 꼼꼼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이걸 보시면 알게 됩니다. ” 이날 대담에 함께한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은 전수산 지사의 유품이 담긴 커다란 상자 속에서 누렇게 빛바랜 각종 졸업장이며 흑백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자와 한글이 섞인 평양 진명여학교 졸업장은 융희 2년(1908) 7월 8일 발행으로 되어 있었는데 졸업장에는 생년월일 대신 ‘15세’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는 ‘독서, 생리(生理), 창가, 산술, 작문, 지지(地誌),습자(習字),역사, 수신(修身)을 배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덕희 소장의 말은 이어졌다.

1911년 이화학당 졸업장 - 이덕희 소장 제공

“전수산 지사님은 평양에서 하와이로 건너오시기 전 여학교에서 받았던 졸업장이며 수업증서(각 학년 진급시에 받는 증서), 성적 우수상장 등을 꼼꼼하게 챙겨 가지고 오신분입니다. 전수산 지사 덕에 우리가 당시 진명여학교에서 이뤄졌던 수업 과목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하와이로 건너 오셔서도 당시 하와이에서 발행하던 <신한국보>와 <국민보>등 신문을 구독하며 꼼꼼하게 모아둔 덕에 오늘날 사료로서 크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


전수산 지사는 1942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大韓人婦人救濟會) 회장으로 있으면서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도왔다.

“할머니의 독립운동은 굉장히 적극적이셨는데 특히 독립자금을 억척스레 모아서 임시정부를 지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남기신 유품 가운데는 당시 임시정부에서 받은 각종 증명서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요. 저는 할머니의 유품을 모두 한국학 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외손자인 티모시 최 선생은 안타깝게도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이덕희 소장의 통역으로 대화가 이뤄졌다. 티모시 최 선생처럼 한인 3세들은 현지에서 어떻게든지 살아남기 위해 영어위주의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미국 본토로 건너가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무어헤드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현재는 할머니가 잠든 땅 하와이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75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이는 티모시 최 선생은 전수산 할머니와의 추억이 유독 많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티모시 최 선생의 나이 27살 때까지 살아계셨으니 말이다. 전수산 할머니와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숨지기 전날 까지 일기를 쓰셨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셨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시고 활동적이셨으며 그리고 우아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분이셨습니다.”

말만 제대로 통한다면 몇 시간이고 전수산 할머니에 대한 대화를 나누련만, 영어가 짧은 기자로서는 통역을 통해서만 알아들어야 하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허리수술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티모시 최 선생은 고국에서 전수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달려간 필자를 위해 1시간여나 되는 장시간의 대담에 응해주었다. 

전수산 지사의 무덤에 꽃을 바치는 이윤옥교수

전수산 지사를 비롯하여 심영신, 황마리아, 박신애 등 하와이지역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쫓아 필자는 지난 4월 13일부터 21일까지 하와이를 찾았다. 가장 먼저 후손을 만난 것은 전수산 지사로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에 잠든 전수산 지사의 무덤을 돌아보면서 많은 상념에 젖었다. 또한 초기 이민자들이 일하던 사탕수수밭 농장 자리에 세운 플렌테이션빌리지 조선관 등을 찾아 힘겨운 이국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하면서 조국독립에 커다란 기틀을 마련한 애국지사들의 헌신적인 삶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전수산 지사는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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