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문신 백호(白湖) 임제가 호남의 삼한(三寒)인 무주 한풍루(寒風樓), 남원 광한루(廣寒樓), 전주 한벽당(寒碧堂)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남아 있는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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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이러한 「무주 한풍루(茂朱 寒風樓)」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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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茂朱 寒風樓)는 수많은 묵객이 글과 그림으로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시대상과 문화상을 알 수 있는 건물로 건물의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조선전기 문신 성임과 유순 등이 한풍루를 보고 쓴 시와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초기부터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고, 임진왜란(1592) 당시 전소된 이후 인조 24년에 보수, 숙종 4년(1678년)에 단청, 영조 5년(1729년)과 정조 7년(1783년)에 중수되었으며 1971년 11월 15일 현 우치에 복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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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는 조선 시대 관아누정 격식에 맞추어 충실하게 건축되었으며 여러 건축적 요소에서 구조적 안정감과 미적가치를 고려한 무주 한풍루만의 건축적 특이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기둥과 창방 등 주요 목부재의 연대 분석이 마쳐짐에 따라 진정성 있는 복원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임진왜란 전후의 중수와 복설, 일제강점기 훼철될 위기에 있던 건물을 원래의 모습과 자리로 되찾으려 한 무주군민의 애환이 담긴 점,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중층 관영 누각으로 17세기 시기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점 등 역사, 건축,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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