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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연재]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일본은 끝까지 악마를 택했다

"일본은 끝까지 악마를 택했다…기약 없는 귀향의 꿈"

▲①선명(船名): 우키시마호(浮島丸) ②선주(船主): 오사카상선 대표(大阪商船 代表) ③제조(製造): 미츠이 타마시마 조선소(三井玉島造船所) ④제조일(製造日): 1937년 3월 15일(1937年3月15日) ⑤선종(船種): 화객병용(貨客倂用) ⑥총톤수(總t&#22136;數): 4,730톤(四千七百三十&#22136;) ⑦길이(長): 108.43미터(108.43m) ⑧선박번호(船舶番&#21495;): 42601 ⑨계약양식(契約樣式): 1(一) ⑩징발년월일(徵發年月日): 1941년 9월3일(1941年9月3日) ⑪용도별(用途別): 포함<대형>(砲艦<大>)⑫소관(所管): 요코스카해군경비부(橫須賀海軍警備部) &#9644;1945년 4월 오미나토해군경비부로 편입. 같은 해 8월18일 오미나토항 앞바다인 무츠만에 정박하여 19일부터 한국인을 태우기 시작하여 21일 승선을 완료하고 22일 밤 10시에 항해를 개시함. 사진/우키시마호진상규명회 전재진 회장

일제 36년 동안 수백만의 한국인은 일본 본토와 만주, 시베리아, 북해도, 사할린, 치시마, 캄차카반도, 남태평양전선 등으로 강제 동원돼 그들의 선두에서 총알받이로, 노무자로, 위안부로 짐승 취급을 당하며 전쟁 도구로 쓰였다. 잡혀가지 않은 한국인은 사는 곳에서 전쟁 보급대와 식량기지 역할을 하며 착취와 모진 차별, 학대를 감내해야 했다.

전쟁에서 지자 그들은 잡아간 한국인들을 버려두고 본국으로 도주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우리 동포들은 발이 묶인 채 차가운 시베리아나 북해도, 사할린 등에 남겨져 원치 않은 또 다른 정복자의 소유가 돼야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은 이들은 그나마 낫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로부터 1주일 뒤인 22일. 일본은 일본 본토 최북단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의 군사시설 공사장에서 참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해방을 맞은 한국인들 최소 1만여 명에게 부산으로 보내주겠다며 우키시마호를 타라고 했다. 그들은 4730t급의 배에 최소 7천명에서 최대 1만2천여 명을 그야말로 ‘우겨넣어’ 태웠다. 그러고는 부산이 아니라 일본 연안 바닷가에서 배를 폭파시켜버렸다. 일부 생존자들과 양심 있는 일본인들에 의해 이 사건이 알려졌지만 한일 양국의 비정한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로부턴 모든 한국인이 주권국가의 국민이다. 그러니 그날 이후 일본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모든 범죄는 주권국가 간의 정당한 국제법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인면수심의 대량학살 범죄에 대해 진상규명도 공론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키시마호 사건 만 72년이 되던 지난 8월, 본지에 ‘우키시마호폭침사건진상규명회’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그들은 언론과 국민, 정부의 관심과 공론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서 그동안 우키시마호의 진실에 대해 조사 축적한 방대한 자료를 보내왔다.

이를 검토한 본지는 5회에 걸쳐 특별기획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연재를 시작하는 우리 가슴은 무겁고 착잡하다. 한일 양국의 무관심 속에 자칫 잊혀져 버릴 통한의 역사를 공론화하고 반드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결자해지가 따라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리라. /편집자 주

1. 일본은 끝까지 악마를 택했다
2. 우키시마호는 어떻게 침몰했나
3. 나는 우키시마호를 알고 있다
4. 한·일 정부는 해원(解寃)에 나서라
5. 오늘 우리는 역사에 탄원한다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라는 이름이 5천만 국민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날이다. 온 국민이 바라보는 가운데 따뜻한 가슴을 가진 300여 생명이 차가운 바다 밑으로 스러져갔다. 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 살아남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어른의 말을 잘 들은 청춘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한국은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선장과 선원들은 제 목숨 챙기기에 바빴고,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재난 컨트롤타워는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스러져간 세월호의 원혼은 결국 촛불로 활활 타올라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던 정권을 무너뜨렸다. 

# 1945년 8월 24일
‘악귀 같은 왜놈들의 만행도 오직 살아 돌아간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냈다. 8월 15일, 마침내 왜왕이 항복을 선언했다. 왜놈들의 전쟁도구로 끌려왔던 동포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감격으로 얼싸안고 목놓아 울었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웬일로 왜놈들이 군함으로 부산까지 태워준다며 나섰다. 이 배를 못 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배급도 끊긴단다. 저희도 인간인지 양심은 있어서 마지막 돌아가는 길은 편의를 봐주네.’

▲1953년 10월 우키시마호 인양 당시 선체를 조사할 때 배의 안쪽 밑바닥이 부서진 파편으로 엉켜있는 모습. 이 사진은 타무라(田村)씨가 사진기를 주머니에 넣고 몰래 찍은 사진을 오사카 국제신문이 공개했다. 조사자들이(붉은색 원) 여기저기 서 있다. 9년 전 선실 안에서 죽어있을 한국인의 유해를 감안하여 조일우호협회가 인양할 때 유해의 원형을 보존할 것을 건의했으나 배를 인양한 이노사루베지 측은 배를 다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여 인양했다. 이로써 9년 전 희생당한 한국인들은 또 다시 다이나마이트 폭탄 세례를 맞았다.(마이즈루 우키시마호진상구명회 회장 리병만 제공)

고국 땅에서 어린 나이에 길 가다 끌려와서 일본 본토 최북단인 아오모리현 해군기지 부두 노역자로 죽을 고생을 하던 A씨. 1945년 8월 22일, 귀향의 환희와 설렘으로 일본이 제공하는 귀국선에 올랐다. 우키시마호(浮島丸)였다. 하지만 A씨의 귀향의 꿈은 거기까지였다. 24일 우키시마호는 굉음과 함께 일본 연안의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일본의 간계는 수천여 명의 귀향 한국인들을 한꺼번에 수장시키는 것이었다. 일본은 끝까지 악마의 길을 택했다.

# 72년 이어온 귀향의 꿈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일본. 그들은 한국으로 보내주겠다며 수천여 명의 한국인을 군함에 태워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시켰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은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고, 역대 우리 정부는 생존자들의 절규에도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72년 전의 우키시마호 사건은 배에서 미리 빠져나간 일본 해군과 인근 주민들, 일부 살아남은 이들 외에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대참극이다. 그나마 지옥에서 살아남은 분이나 당시 목격자들도 메아리 없는 절규에 지쳐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머지않아 증언할 사람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게다.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에 ‘고불문 금불문(古不聞 今不聞)’ 인면수심의 참극과 역사적 진실이 퇴색하고 있다.

우리 바다에서 가라앉은 세월호는 불의한 정권을 침몰시키며 원혼들을 미흡하나마 해원(解寃)으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72년 동안 악귀 같은 나라의 바다 밑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원혼은 여전히 기약 없는 귀향의 꿈을 꾸고 있다. 

박달 기자  pc2000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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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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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nom 2025-08-25 10:58:09

    우키시마호 승선 조선인 귀향 폭파사건을 다큐멘타리로 제재해서 귀민들이 봐야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천인공노할 만행인데 진정한 사과를 했는가? 한민죄 뿌리역사 말살 한민족 역사 유물 찬탈 등등 너무 많은 죄를 언제 속죄하는가? 전세계에 공개해라! 일본전쟁 만행을~~   삭제

    • 00 2019-09-17 00:39:14

      교과서에도 없으니 모를수밖에 이것이야말로 바다에서 학살,
      놀라운일 예전부터 폭파설이 맞는거 같더라니 다큐다 다큐 이거 진짜 한국인이라면 봐야한다,,,가슴시리고 아프지만 이런 일본놈들은 반드시 복수해야한다   삭제

      • 지영진 2019-07-09 18:35:47

        몰랐던내용이아 더욱 마음이 아파오네요~~
        일본/왜놈들 아주 치가 갈리네요 언제쯤 사과하고 반성할지...   삭제

        • 조윤정 2017-09-07 00:56:12

          감사합니다.
          너무 몰랐던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
          빠른 해원의 길이 열리기를 발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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