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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TV] 1천년 역사 조작한 일본서기 북한학자 김석형의 분국설로 해석

아래는 이덕일 역사 TV_이덕일의 한국통사의 "1천년 역사 조작한 일본서기 북한학자 김석형의 분국설로 해석" 제목의 영상의 내용 전문이다.

출처 주소 https://youtu.be/hjrlk1XounA

이번 시간에는 임나를 바라보는 핵심의 논리 중 하나인 분국설分國說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임나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건 ‘임나의 위치가 어디인가’인데요. 남한 강단사학과 일본 극우파 역사학자들은 전부 다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나 가야설이죠. ‘서기 369년에 일본의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를 설치했고, 그것이 562년에 신라에게 멸망했다.’라고 하는 것이 핵심 논리이며 그 위치가 가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북한 학계는 1963년에 김석형金錫亨(1915~1996)이라는 경상제대 출신의 학자인 대구 사람인데, 광복 이후에 북한으로 월북했습니다. 김석형이 1963년에 삼한삼국의 일본 열도 분국절이라는 논문을 발표해서 일본 역사 학계를 초토화 시킵니다.

그 핵심은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는 여기 본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나라들이 아니고 이쪽 본국의 나라들이 일본 열도에 진출에서 세운 소국, 본국 식민지다.’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고고학적으로도 다 사실이라는 것이 수도 없이 입증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본 열도에는 큐슈나 나라나 이런 지역에는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특히 가야와 백제의 유적 유물들이 수를 셀 수 없이 많이 있죠. 가야와 백제계가 일본의 진출해서 처음에는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 큐슈에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이 세력들이 6세기 무렵에 나라 지역으로 옮겨가고 난 다음에는 백제계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본의 야마토왜의 역사라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큐슈와 나라 지역에 있는 여러 유적유물들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일본 왕가의 시조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곳이 큐슈 남부의 미야자키현의 사이토바루 고분군인데, 그 고분군에서 나온 철모로 보면 가야의 대가야가 있었다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나온 철모하고 완전히 같습니다. 

그러니까 ‘가야 세력이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정치체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가야의 분국이다, 소국이다’라고 하는 것이 북한학계의 분국설이죠. 분국설이 나온 다음에 일본 학계는 아주 초토화가 됐어요. 왜냐하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사들은 아주 극우파에 경도傾倒된 사람이 아니면 사실로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는 고구려 광개토대왕하고 그 당시에 고구려 백제 신라 왕들이 세 나라가 동시에 일본의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고 하는 등 이런 이야기들, 장수왕도 조공을 바쳤다는 등,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실려 있기 때문에 일본 학자들도 ‘『일본서기』를 과연 사실로 볼 수 있겠느냐.’라고 이제 의아해하고 있을 때 북한 김석형의 분국설이 등장하고, 분곡설의 관점으로 보면 일본서기 자체가 이해되는 겁니다.

근데 이 분국설을 모르고 일본서기를 보게 되면, 일본서기라는 책은 서기 720년에 백제계 사람들이 만든 책이죠. 그런데 663년에 지금의 금강하구라고 추정하는 백강하구에서 백제 부흥군하고 야마토왜에서 온 지원군하고 나당연합군하고 국제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나당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백제는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 57년 이후에 일본에서 『일본서기』라는 책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라는 책은 말은 역사서인데 지금까지 인류에서 나왔던 역사서 중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역사서예요. 첫 번째로 연대가 안 맞습니다. 일본사의 시작은 빠르면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무렵에 백제계가 진출해서 세우는 것이 소위 야마토왜의 시작인데, 이걸 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바꿔놨어요. 그러니까 약 1000년 이상을 끌어올린 겁니다.

천 년 이상을 끌어 올리다 보니까 앞뒤가 맞을 수가 없게 되어 있죠. 그래서 일본서기 연대를 해석하려면 일본인들도 안 맞는 걸 알아요. 그래서 주갑제周甲制라는 걸 만들었는데, 주갑제는 우리가 말하는 환갑이 주갑인데 60년마다 주기가 돌아가지 않습니까. 이걸 120년, 240년 끌어 올려서 시기를 맞추는 거예요. 

그런데 맞추는 기준이 『삼국사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서기』 신공왕후神功皇后(170~269?) 서기 255년에 ‘백제의 초고왕이 흥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255년 조에 『삼국사기』를 보면 초고왕이 아니라 고이왕 때고 255년에 세상을 떠난 임금이 없어요. 그래서 그걸 갖다가 120년 끌어올려 보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서기 375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고 나옵니다. 『일본서기』의 255년조 기사는 120년 끌어 올려서 해석해야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끌어 올려서 맞느냐 틀리느냐의 기준이 『삼국사기』라는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다 그렇게 해석을 해왔는데, 지금도 남한 강단 사학자가 대단히 존경하는 일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삼국사기』는 가짜고 이 『일본서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조선총독부에서 적극적으로 밀면서 『삼국사기』 불신론이 나오게 되고, 이 『삼국사기』 불신론이 아직도 남한 강단 사학계의 하나뿐인 정설이에요. 

『삼국사기』 불신론을 정설로 신봉하는 남한 강단 사학계는 사실 대한민국 사학계라고 보기가 곤란한 지경인 거죠. 또한 『일본서기』는 황제국과 제후국을  바꿔 놨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칠지도七支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칠기로로 헌상했다. 위에 바쳤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소노카미 신공에서 나온 칠지도의 명문을 보면, 백제에서 ‘제후왕에게 공급할 만하다.’라고 해서 황제국인 백제가 제후국인 야마도 왜에 하사한 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일본서기』는 그 황제국과 제후국을 거꾸로, 야마토 왜가 제후국이고 백제가 황제국인데 이것을  거꾸로 썼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또 하나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전부 다 야마토왜의 속국으로 그려놨습니다. 『일본서기』 시각으로 그 시대를 보면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의 예만 들면, 『일본서기』에서는 서기 370년, 371년 무렵에 ‘야마도 왜에서 사신이 오니까 백제의 근초고왕이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절하면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삼국사기』에는 어떤 일이 발생했냐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북쪽으로 쳐들어가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같은 해에 야마도 왜에서 온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는 『일본서기』의 기사가 하나 있고, 그다음에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쳐들어가서 고구려 국왕인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는 두 기사가 서로 충돌합니다. 그럼 어떤 것이 사실인지 검증을 해봐야겠죠.

『일본서기』의 주장은 자기만의 주장이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이 주장은 「백제본기」 뿐만 아니라 「고구려본기」에도 나와 있고, 중국의 위서나 북서 같은 책에도 그대로 나와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는 가짜고 『일본서기』가 진짜다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죠.

『일본서기』의 내용은 자기 정치적 입장이 어떤 걸 떠나서, 약간의 상식만 갖고 있어도 이게 사실이 아니구나 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김석형이나 요즘에 조희승 씨는 ‘한 역사서를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을 쓰겠냐. 『일본서기』에도 나름의 진실이 있을 것 아니냐.’ 이런 착안을 하게 되죠. 그 착안을 하고 분국설을 바라보니, 『일본서기』 상당한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겁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기사들은 본국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본국들이 일본열도에 진출에서 세운 소국, 분국에 관한 내용들이다.’ 하는 이야기들이죠. 예를 들면 신라가 야마토왜에 8년 동안 조공을 안 바쳐서 야마토왜가 공격할 것 같으니까 고구려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는 거죠. 고구려에서 보호해주겠다고 해서 군사 100명을 파견했다는 겁니다. 

이 100명을 파견해서 보호할 수 있는 신라라는 건 도저히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신라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분국설이 나오고 일본 학계가 초토화가 됐는데, 문제는 남한 강단사학이 분국설에 가세를 했으면 일본 극우파 역사는 이미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이 분국설에 대해서 일본극우파보다 더 아주 분노하면서 공격을 합니다.

심지어 북한학계는 ‘임나가 어디냐.’ 남한학계는 무조건 ‘임나가 가야다.’라고 하는데 북한학계는 ‘임나는 오카야마현에 있었다. 거기에 임나뿐만 아니라 백제의 본국인 백제도 있었고, 신라의 본국의 신라도 있었다.’ 오카야마현에는 1만 2천 개의 고대 분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츠쿠리야마 고분을 비롯해서 거대한 고분들이 있고, 해발 약 400M 정도에 쌓은 기노조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들을 북한 학계에서는 5세기 무렵에 가야가 쌓은 산성들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축성법이 다 가야의 것이고, 츠쿠리야마 고분군에서 나온 출토 유물들이 다 가야의 것입니다.

김석형의 분국설에 대해서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한을 갖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 김석형의 분국설에 예를 들어서 모든설이든 완벽할 순 없겠죠. 그럼 하나의 약간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고대 선조들이 고대 일본 열도에 가서 분국을 세웠다. 일본열도에는 무수히 많은 가야계 백제계 유적유물이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건데, 그걸 갖다가 대한민국 사람의 국적을 가지고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유를 이 역사학을 깊이 하지 않으면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든 거죠. 

얼마 전 일본 총독부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비평에서 사이비 역사학과 한국 고대사 여기에 분국설을 갖다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일본에는 고대 산성들은 전부 다 고구려 백계 신라 가야계 사람들이 건너가서 쌓은 성들입니다. 그런데 역사비평에서 비판한 내용이 ‘이 성은 6세기 이후에 건설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의 거짓말을 또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오키야마에 있는 기노조가 5세기 때 쌓은 산성이라고 말하고 있고, 일본 역사 대백과사전도 기노조의 축성築城 시기에 대해서 두 가지로 5세기 설도 써놓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두 가지 설을 써 놓고 있는데요. 역사 비평에서 사이비역사학과 한국고대사라는 ‘조선총독부 역사학은 영원하다.’ 라는 것을 발표하니까 조선일보에서 남한의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막 띄웠습니다. 한겨레 경향과 한국일보에서 마치 위대한 학자들이 나온 것처럼 이 젊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건 일본의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주장하면서 분국설을 비판하기 바쁜데, 역사적인 사실을 바꿀 수가 없는 겁니다. 

이 분국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일본 열도에 그렇게 무수히 많은 역사 유적·유물들을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역으로 한반도 남부에 외계 유물들이 가득해야 됩니다. 200년씩이나 지배했으면 지명들도 가득해야 돼요. 그런 게 이제 전혀 없는 거죠. 일본 학자들이 고대의 가야를 임나로 둔갑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뭔가 논리가 필요한데, 논리를 지명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일본서기』에 탁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임나 7국 중에 하나라는 거죠. 그러면 탁순을 쓰에마스야스카즈가 어디로 비정했냐면 대구라는 겁니다. 대구의 옛 이름이 달구벌인데 달과 탁순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달하고 탁하고 발음이 비슷하다는 희한한 논리가 통하는 나라고, 또 하나는 『일본서기』에 침미다례忱彌多禮라고 나오는 부분을 쓰에마스야스카즈가 아무리 찾아봐도 침미다례와 비슷한 이름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침미다례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어보니까 토무다례로 나옵니다. ‘전라도 강진 옛날 이름이 도모군이었다.’라고 해서 침미다례를 도모군으로 비정한 겁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맞으려면 전라도 사람들은 1500년 전에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야 돼요. 그래야 침미다례 한자를 쓴 것을 토무다례라고 읽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형구씨는 ‘위치 비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에마스 비정을 그대로 따랐다.’라고 자기 책에다 써놨죠. 근데 특별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위치 비정은 무조건 쓰에마스설을 따라 가지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은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찾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을 『일본서기』에 나오는 증명을 무턱대고 한국 가야 전라도 이쪽 지역에서 막 찾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앞뒤가 안 맞는데요.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검사만 동일체 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강단 사학도 동일체 원칙이 있어요. 검사동일체원칙보다 더 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걸 보호하고 있는 좌우 언론 카르텔이 막강하죠. 이걸로 그냥 밀어붙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국심에서 낸 세금을 갖다가 거꾸로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옹호하고 선전하고 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빨리 이런 잘못된 현상을 시정하고,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눈으로 역사와 가야사를 바라보고 임나를 바라보는 쪽으로 빨리 전환이 되어야 할 때고, 어떻게 보면 이미 때가 한참 늦었다라고 볼 수 있는데.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루빨리 우리 국민들이 이 부분에 대한 각성을 해가지고 이 식민사학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연구했던 역사학이 일반 국민들의 평범한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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