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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에 널린 가야계 유물과 유적

[이덕일의 한국통사] 일본열도에 널린 가야계 유물과 유적 https://youtu.be/VyNtiOUq7G4

이번 시간에는 가야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는데요. 가야하면 헷갈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남한 강단사학이 쓴 가야사나 남한의 대표적인 사전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입니다. 이 사전에 나와 있는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라는 반응들을 제가 많이 들었어요. 

사전은 가장 간략하게 육하원칙에 의해서 기승전결을 써 줘야하는데 우리나라의 역사 관련 사전들은 일단 앞뒤가 달라요. 앞뒤가 다르고 조금만 들어가보면 모순점들이 상당히 많죠. 장황하게 써놓고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남한 강단사학자들 말이 고대사에 관해서 무슨 설명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가면 ‘일본 끌어들였구나’ 하고 보면 100% 정확해요. 

무슨 얘기냐면 아마도 왜를 끌어들여서 설명하다 보니까 ‘야마도 왜가 가야를 점령했다.’든지 아니면 ‘요즘은 점령했다.’라고까지 얘기를 잘 못하니까 ‘야마도 왜가 가야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야에 외교기관이 있었다,’ 또는 ‘교역기관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을 돌려서 설명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고대 가야에 왜의 교역기관이 있었다.’고 그러면 세계 무역사를 다시 써야 돼요. 그 당시에 야마도 왜에서 무역기관을 설치해서 기관 설치했다는 것은 상주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또 외교 기관이 있었다, 가야에 야먀도 왜에 외교 기관이 있었다.’ 이것도 세계 외교사 다시 써야 돼요. 전 세계에서 사신들이 잠깐 왔다 갔다 하는 사례는 많이 있지만 야먀도 왜에서 대사관을 설치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이야기들은 뭐냐면 원래 이 사람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야를 야마도 왜가 지배했다. 임나일본부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요즘은 차마 그렇게까지 얘기 못하니까 말장난으로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총론에서 말해 놓고 나서 각론에 들어가 보면 ‘외교기관이 있었다, 교역기관이 있었다.’ 이러는데 말장난으로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야에 왜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자꾸 하고 싶어 하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실제 가야에서 벌어진 일과 전혀 상관없는 왜 이야기를 자꾸 끌어들이다 보니까 앞뒤도 안 맞고 헷갈리는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분국을 세웠다.’ 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모든 게 단단하게 정리가 되는데 벌써 『민족문화백과사전』 저희가 갖고 있는 거는 책으로 돼 있는 건데요. 요즘 인터넷에 떠 있는 거 『민족문화백과사전』을 보면 내용이 좀 달라졌어요.

최근 것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가야에 대해서 최근 거 중심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쭉 한번 읽어 보시면 끝까지 읽기도 힘드실 거예요. 무슨 이야기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민족문화백과사전』, 총론과 각론의 내용이 각각 다르다?!

먼저 총론에서 이 사람들이 딱 한마디로 쓰면 그거는 맞게 써놔요. 항상 뭐냐면 임나일본부설도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가 없었다.’ 이렇게 써 놓지 않습니까? 그런 각론이 그걸 뒷받침해야 되는데 각론으로 가면 임나일본부가 없었다는 건지 있었다는 건지 읽어보면 꼭 있었다는 거 같이 써놓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헷갈리는 건데 『민족문화백과사전』 총론을 보면 가야에 대해서 ‘서기전 1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주로 경상남도 대부분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영유하고 있던 고대국가’ ‘서기전 1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고대국가였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본문에는 “서기 2세기경에는 이 지역에 소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3세기에는 12세기의 변한 소국들이 성립되었으며 그 중에 김해에 구야국이 문화 중심으로서 가장 발전된 면모를 보였다.” 처음에 ‘총론의 서기전 1세기’부터 얘기해 놓고 ‘3세기에 12개의 변환 소국들이 성립되었다.’ 각론 들어가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3세기에 지금 경상도 지역에 12개의 동네 국가들이 3세기에 있었다.’ 이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3세기 말에야 결국은 가야가 건국됐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총론에서는 마치 서기전 1세기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들은‘ 2~3세기에 걸쳐 김해에 가야국을 중심으로 12개 소국들이 합친 변한 소국 연맹 즉 전기 가야 연맹체를 이루었다.’ 이렇게 말했는데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12개 소국들이 합친 변한 소국 연맹 즉, 전기 가야 연맹체를 이루었다.’ 이게 어느 사료에 나오냐는 이야기에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서기 1세기 가야가 건국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안 나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뭐라고 나옵니까? 『삼국사기』에는 “서기 77년에 가야와 신라가 전쟁해서 신라가 가야군 1,000명의 목을 벴다.” 이렇게 나오고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6가야가 나오지 12가야 안 나와요. 그러면 12가야는 뭐냐?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나와 있는 이야기 중국의 『삼국지』하고 『후한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무차별로 가야에 씌운 건데요. 
삼국지』 이야기를 『삼국지』나 『후한서』를 왜 끌어 들이냐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기 위해서 끌어들이는 겁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서기 전 1세기 신라, 고구려, 백제가 건국했고 ‘서기 1세기에 가야가 건국했다’라고 써 있어요. 그런데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그건 ‘다 가짜다.’ 라고 하니까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그걸 따라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가짜다. 라고 해요. 

『삼국지』의 변진 12국이 12가야라고 하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

‘그럼 그 시기에 뭐가 있었냐?’ 하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는 게 중국의 『삼국지』나 『후한서』에 삼한이 나오는데 그 책들에 나오는 ‘삼한은 진한, 변한에는 12개의 소국들이 있었고 마한에는 54개의 소국이 있었다.’ 그것도 정확하진 않아요.  ‘합해서 그 78개 소국들이 한반도 남부에 우글대고 있었다.’ 이게 『삼국지』「위서」동이전 한조에 나오는 이야기 근데 『삼국지』는 정작 그렇게 안 나와요.

이 사람들 논리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조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상황을 말하는 거라 그러는데 『삼국지』 한조에는 ‘삼한은 사방 사천리다.’ 그렇게 나와요. 그럼 지금 한반도 남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다 합쳐봐야 사방 천리 밖에 안되지 사방 사천리가 됩니까? 그러니까 남한 강단사학자들하고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어떻게 해석 하냐면 ‘4자는 1자를 잘못 썼다’ 이러는 거죠.『삼국지』만 4로 써놓고 『후한서』는 1로 써놨으면 또 뭐 그럴 수도 있죠. 『삼국지』나 『후한서』나 똑같이 ‘삼한은 사방 사천리다.’ 이렇게 써 놨어요. 그러면 사방 사천리가 되는 곳에 가서 삼한을 찾아야죠.

만주국이 세운 청나라, 청나라 건륭제가 자기네 조상들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 중국 당대 청나라가 천하를 다 통일했으니까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시켜서 『만주원류고』란 이야기를 쓰게 합니다. 『만주원류고』는 삼한이 전부 요동 반도에 있는 걸로 써놨어요. 그러다 보니까 또 뭐라고 써놨냐면 『민족문화백과사전』에 변진 12국 이거는 읽기도 힘들어요. 

‘즉 전기 가야 12국에는 ①미리미동국 ②접도국 ③고자미동국 ④고순시국 ⑤반로국 ⑥낙노국 ⑦미오야마국 ⑧감로국 ⑨구야국 ⑩주조마국 ⑪안야국 ⑫독로국이 있다.’ 이름도 아주 힘들죠. ‘이중에서 거의 확실하게 위치가 비정되는 것은 밀양·고성·김해·부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개연성이 높은 개령·고령·창원·칠원·단성·함양 등들 포함하여 보면 변진 12국의 범위, 즉 전기 가야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경상남도의 강역과 비교가 되면서 약간 차이가 나는 정도다.’ 나라 이름에 이상한 나라 이름 써놨죠? 이게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하나도 안 나와요. 『삼국지』에 나오는 걸 갖다 붙여 놓은 건데 『삼국지』에 뭐라고 나오냐면 나라 이름들만 써놨어요. 위치가 어디라고 안 나와요. 그런데 이 사람들 뭐라고 하냐면 ‘이 중에서 거의 확실하게 위치가 비정되는 곳은 밀양, 고성, 함안, 부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앞에 이상한 날 이름들이 위치가 확실하게 비정되는 곳이 밀양, 고성, 김해, 함안, 부산이라는 거예요. 무슨 근거 가지고 여기 비정했어요? 아무 근거가 없어요. 이 나라 이름들은 『삼국지』에 ‘무슨 나라가 있었다’라고 이름 써 놓은 거 밖에 없어요. 그 때 한번 나오고 끝입니다. 그러면은 이것을 밀양, 고성, 김해, 함안, 부산에 비정하려면 그다음에 근거가 있어야 되잖아요. 아무 사료가 없어요. 그냥 자기네 막 머릿속에 ‘아 여기는 여기다 찍자.’ ‘여기는 여기다 찍자’ 해놓고 자기들끼리 ‘아 이거 확실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역사학이라고 볼 수가 없는 이야기들을 지금하고 있는 거예요. 

『일본서기』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베낀 한국의 『민족문화백과사전

왜냐?  『일본서기』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건데 그래서 보면 여기에 또 뭐라고 써놨냐면 『민족문화백과사전』 “가야의 4세기 중후반에 백제의 근초고왕은 대방군의 옛 땅을 둘러싼 고구려와의 경쟁을 위해 가야 및 왜의 후원을 얻고자 하였다. 백제 근초고왕이 대방군의 옛 땅을 둘러싼 고구려와의 경쟁을 위해서 가야 및 왜의 후원을 얻고자 하였다.”는 거예요. ‘백제의 근초고왕이 가야와 왜의 지원을 요청했다’라고 써놓은 겁니다. 이 사료가 있냐? 서류 하나도 없어요.

요즘 인터넷 들어가 보시면 『삼국사기』 다 서비스되고 있어요. 『삼국사기』 백제 근초고왕조 한번 쳐보세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나. 왜에 관한 얘기 단 일언반구도 안 나와요. 또 근초고왕이 가야 후원을 얻었다 하는 이야기 일언반구도 안나옵니다. 이 이야기 뭐냐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 쳐들어가서 구국원왕을 전사시키지 않습니까? 백제 혼자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뒤에서 가야와 왜가 도와줘서 했다는 건데 남한 강단 사학자들이 한마디 할 때 항상 이해가 안 가는 구절 나오면 일본 극우파들의 교과서인 『일본서기』를 찾아보면 모든 답이 나옵니다. 『일본서기』에 ‘서기 369년에 야마도에서 군사를 보내서 신라를 공격해서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 라고 나와있는 그 구절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근초고왕이 야마도 왜의 사신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하는 그런 『일본서기』의 이야기를 갖다 끌어드린 건데요. 『일본서기』에는 근초고왕이 고구려와 싸운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안 나와요. 

『일본서기』에 일방적인 주장들 『삼국사기』의 시각으로 백제의 근초고왕을 보면 “369년에 고구려가 쳐들어오니까 근초고왕이 습격해서 고구려 군사 5만의 목을 베고 황색 깃발을 사용해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했다.” 이렇게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황색 깃발이 뭐냐면 바로 황제를 뜻하는 색이 황색이에요. 그래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말하는 근초고왕은 고구려군을 격퇴하고 황제의 황색 깃발을 사용하면서 군사들을 사열하는 강력한 군주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일본서기』에는 같은 해에 야마도 왜에서 군사를 보내서 가야를 점령하고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서 침미다례를 도륙해서 백제에게 주니까 백제왕이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다 『일본서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371년조에는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야마도 왜에서 사신이 오니까 백제 근초고왕 부자가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이렇게 나와요.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이죠. 

『삼국사기』와 중국의 『북사』, 『위서』에 나오는 진실 
『삼국사기』는 “근초고왕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라고 나오는데 『일본서기』는 야마도에서 사신을 보내오니까 근초고왕이 자기 아들 근구수를 데리고 이마를 땅까지 대면서 절하면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나옵니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이죠. 그럼 뭐가 거짓말이냐?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똑같이 나오고 그 다음에 중국의 『북사』나 『위서』에 똑같이 나와요.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야기는 한국기록과 중국기록에 다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 이야기는 그냥 헛소리란 이야기죠. 『일본서기』는 ‘근초고왕이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다’라고 한 이야기가 『일본서기』를 갖다 그 해당 기사를 서기로 환산하면 서기 251년조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자기네 마음대로 아 이거는 120년 끌어올려야 된다라고 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120년 끌어올려 가지고 371년의 사건이다.’ 이렇게 해석한 겁니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여기에 그대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끌어들여서 ‘4세기 중후반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은 대방군의 옛 땅을 둘러싼 고구려와 경쟁을 위해 가야 및 왜의 후원을 얻고자 하였다.’ 이렇게 『일본서기』 그냥 끌어들여서 설명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역사를 조금 알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나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근초고왕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이런 얘기가 없는데 이건 어디서 나왔지’ 하다 보니까 보통 『일본서기』나 일본 극우파들 역사관에 정통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알 리가 없는 거죠. 
그러고 나서는 ‘백제의 교역로 개척에 따라 가야 연맹은 다시 김해에 가야국을 중심으로 이런 쪽으로 통합되어 백제 왜 사이에 중개 기지로 안정적인 교역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백제는 가야 없으면 일본하고 교역 못한다는 이야기에요. 아니 백제가 해상 왕국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백제가 한강 유역을 통해서 배 타고 일본에 가면 되고 아니면 금강이나 영상강 유역을 통해서 일본에 배타고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백제가 가야를 통하지 않으면 일본하고 교역을 못하는 것처럼 써놨어요. 이 이야기는 뭐냐면 『일본서기』에 탁순국이라고 나오는데 그 탁순국이 대구라는 거예요. 근데 『일본서기』를 보면은 백제의 사신이 탁순국에 가서 귀국, ‘왜를 아주 귀한 나라다’라고 해서 ‘귀국이다’라고 불렀다고 『일본서기』에 나오는데 귀국에 가는 길을 물어봤다는 거예요. 백제 사신이 탁순국에 가서 탁순국을 어디라고 일본 극우파들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비정하냐면 탁순국이 대구라는 겁니다.
해상왕국 백제 사람들이 물어물어 걸어서 내륙의 대구까지 가서 일본으로 가는 길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에요?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이런 식으로 백제는 가야를 통해서만 왜하고 교역할 수 있는 것처럼 써놓은 거죠.

북한 역사계는 가야를 어떻게 보는가
또 후기 가야사 보면은 ‘후기 가야는 나중에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이 성립됐다’ 라고 주장하는 건데요. 그게 뭐라고 써놨냐면 그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고령의 반파국이었으니 이들은 철 생산이 풍부한 가야산에 야로 철광을 소유 개발함으로써 다른 지역보다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5세기 중엽에 이르러 반파국은 호남 동부지역을 포섭하여 백제와 왜를 연결하는 교역 중심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나왔어요. 후기 가야사 설명한 거 보면 그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고령의 반파국이었다. 이렇게 나오죠? 『민족문화백과사전』에서. 그러면 보통 생각할 때는 ‘고령이 반파국이었다’는 무슨 사료가 있나 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죠? 아무 사료 없어요. 근데 『일본서기』에 반파국이라는 게 나옵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반파국을 어디다 갖다가 맞출까? 그냥 고령에다 갖다 맞추자 고령 대가야라고 안하고 반파국에 있다 라고 써놨어요. 철의 왕국 가야니까 가야산의 야로, 야로라는 말이 나오니까 야로라는 말이 철을 제련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를 지배했다, 철광을 소유했다라고 하자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역사학이 아니라 그냥 추리극이에요.
 
그 반면에 북한에서 2,000년대에 만든 『조선단대사』라는 책인데 여기에 2권이 1권은 고조선이고, 2권이 진국, 가야편인데 가야사 개관을 보면은 우리가 북한의 역사학을 볼 때 북한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대사 부분에서는 우리가 북한 역사학계가 가야를 어떻게 보는가 라고 하는 것을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 가야사 개관은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은 “ BC 1세기 말엽에 봉건 소국으로 형성되었다가 1세기 중엽에 독자적인 봉건국가로 되었다.” 1세기 중엽에 독자적인 봉건 국가로 되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뭐냐면 그 1세기 중엽에 가야가 건국되었다라고 하는 이야기죠.

남한의 『민족문화백과사전』은 3세기에 건국했다라고 하는데 북한 역사책은 1세기 중엽에 독자적인 봉건국가로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설명에서 보면은 뭐라고 써놨냐면 “옛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는 김해 일대에서 봉건적인 생산관계가 발생하고 있었으며 BC 1세기경에는 가야 봉건 소국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게 한다. 1세기 초중엽 경에 김수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집단이 북쪽에서 내려와 가야 땅을 비롯한 몇몇 소국에서 이미 있던 지배 세력과 타협 결탁하여 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1세기 중엽경에는 금관가야 김해가야를 중심으로 가야 봉건국가들의 연명체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써 놨어요. 확연히 이해가 가죠? 

이건 뭐냐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로 믿고 가야가 가락국이 서기 42년에 건국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삼국사기』 김유신조에도 나오니까 그걸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고고학적 자료들 여기 보면 “BC 1세기경에 가야 소국의 실태는 의창 경상남도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을 비롯하여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고고학적 자료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문헌자료에 의하면 가야는 1세기 중엽에 건국했다라고 써놓은 겁니다.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 다음에 고고학자료를 인용해서 북한에서는 가야사를 설명하고 있어요.

북한 역사서가 맞는지 자세히 살펴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을 수가 있겠죠. 북한 학자들이 “1세기 중엽에 독자적인 봉건국가가 성립되었다. 김해에 금관가야가 성립되었다.’ 그거는 고고학적 자료를 봐서도 입증할 수 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그렇게 나온다.” 라고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북한학계 식으로 가야사를 이 책은 쭉 읽어보면 그냥 헷갈리지도 않아요. 그냥 슬슬 읽힙니다. 그리고 뭐라고 써놨냐면 “가야 사람들의 적극적인 진출과 정착은 일본열도에 널려져 있는 가야 계통 지명과 옛 문헌 그리고 고고학적 자료 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일본 서부에는 가야계통 지명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가야 사람들이 만들어 쓴 질그릇을 통하여서도 가야 사람들의 진출 정착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북한에서는 가야사람들이 일찍이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소국, 분국들을 세웠던 이야기들을 써놓고 있습니다.

일본열도에 지금 무수히 많은 가야계 지명과 고고학적 자료들이 있습니다. 문헌에 의해서나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서나 간단하게 이해가 되는데 이해가려면  이 사람들은 ‘야마도 왜의 (한반도)가야 진출사를 쓰고 있구나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추종하고 있구나.’ 이렇게 보고 남한 학자들이 쓴 가야사를 보면 ‘정신적인 조국은 일본 극우파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쓰는 걸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겁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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