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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6세기 중반까지 철 만드는 기술이 없없는데 고구려 백제 가야가 일본의 속국이라고 주장

[이덕일의 한국통사] 일본은 6세기 중반까지 철 만드는 기술이 없는데 고구려 백제 가야가 일본의 속국이라고 주장  https://youtu.be/bf4AsPR7GgU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임나에 대해서는 남북한 학계가 아주 다르죠. 남한 강단사학하고 북한 주류 역사학하고 아주 다릅니다. 남한 강단사학은 임나는 가야라고 주장하고 있고 임나 가야가 전라도까지 마치 진출한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북한학계는 1963년도에 김석형이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을 주창한 이후로 임나는 가야계가 아니라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이다라고 입장정리를 했고 그 학설을 조희승박사가 계승해서 임나의 위치는 일본열도에 오카야마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내에서는 민족사학계 쪽에서 임나는 일본열도에 있었는데 대마도에 있었다. 라고 보는 시각이 가장 많고 예전에 윤내현 교수님 같은 경우도 대마도쪽에 관심을 갖다가 요즘은 북한학계의 이야기를 보고 오카야마설로 선회한 것을 최근에 저서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남한학계는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 이렇게 말해요. 임나일본부설 극복은 간단한 겁니다.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이다.’ 그 위치가 어디인가는 두 번째 문제죠.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라고 말하려면은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간단한데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라고 말하고 각론에 들어가면 ‘임나는 가야가 정설이다’ 이렇게 말하죠. 겉 포장물하고 내용물이 달라요. 남한 강단사학은 겉 포장물하고 내용물이 다른 사람들이 쓴 교과서로 공부해야 되는 남한의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대단히 불쌍한 건데요.

그런데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건 369년에 가야를 점령하고 야마도 왜를 설치하고 임나일본부설을 설치했다는 겁니다.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정작 언제 나오냐면 464년조에 처음 나와요. 약100여 년 후에 임나일본부란 말은 그때 처음 나옵니다. 실제 일본이란 국호는 언제 생겼냐? 700년대에 생겼어요.

『사기』에 보면 사기 주석에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가 일본이란 국호를 지어줬다 그렇게 『사기』 주석에 나옵니다. 그러나 어쨌든 『삼국사기』에도 일본 국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700년대에 일본이란 국호가 생겼는데 임나일본부를 일본학자들은 369년에 만들었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 다음에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정작 나오는 거는 『일본서기』에 464년조에 나오고 벌써 이것만 봐도 앞뒤가 안 맞고 말이 안된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식민지가 임나
북한학계의 분국설이 위치 특정한 곳이 확실히 맞느냐는 그 다음에 다시 우리가 연구해 볼 주제입니다.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아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 분국 식민지다라고 하는 분국설은 정확하다라고 평가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분국설에 대해서 일본극우파 역사학자들보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아주 비판의 강도가 세죠. 마치 임나가 가야가 아니고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것이 임나다,’ 라는 것이 밝혀지면 남한 강단사학은 마치 자기네가 다 무너지는 것처럼 아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아주 강하게 비판을 하는데요. 그걸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에 나와 있는 부분인데요. 여기에 먼저 김현구씨라는 고려대 명예교수죠. 이분은 뭐라고 했냐면 “김석형의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내 분국론은 관련 자료를 일방적으로 한국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일본서기』를 일본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야마토정권에 한반도 남부경영론을 만들어낸 쓰에마스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해서 김현구씨는 북한의 김석형이 관련 자료를 한국에 유리하게 해석했다고 막 비판하고 있죠. 그러면서 자신은 쓰에마스는 관련 자료를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했다라고 쓰에마스를 비판하는 것 같이 말을 해 놨죠. 항상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이야기를 볼 때는 총론과 달리 각론이 뭔가를 봐야 돼요. 

그런데 김현구씨는 같은 책에서 뭐라고 썼냐면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은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쓰에마스 야스카즈였다.” 앞에서 쓰에마스 비판하는 듯하더니 여기서는 고전적인 정의를 내렸다는 겁니다. 고전적인 정의가 뭐냐면 “임나가 경상도뿐만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까지 다 차지한 제국이었다” 라고 쓰에마스 야스카가 주장한 게 고전적 정의라는 거에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위치죠. 임나의 위치가 어딘가라고 하는 건데요. “김현구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은 쓰에마스설을 따랐다.” 근데 김현구씨 책에서 『임나일본부설을 허구인가』라는 책에서 지명 비정했는데 쓰에마스와 다른 지명 비정이 하나도 없어요. 자기 자신은 그냥 쓰에마스설을 100% 추종을 한 겁니다.

그러면서 앞부분에는 김석형을 비판하기 위해서 김석형이 관련 자료를 한국 측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라고 김석형만 비판하기 뭐하니까 마치 쓰에마스도 자기가 비판하는 것처럼 한마디 끼워 넣는데 각론 들어가보면 쓰에마스설을 그대로 추종하는 겁니다. 심지어 김현구 씨는 『임나일본부설을 허구인가』에서 이 책에서 백제는 야마토왜의 식민지로 써 놨어요. 

그러면서 백제에서 지진원이라는 왕녀를 야마토에 보냈는데 당시 야마토왜의 웅략이란 일왕이 백제 왕녀를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백제에서는 실례했다 이래서 이번에는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는 거에요. 물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이죠. 지진원은 왕녀도 아닌 사람을 왕녀로 둔갑시켜서 백제에서 왕녀를 야마토 왜에 인질로 보냈고 왕녀를 일 웅략이 불태워 죽이니까 백제에서 무서워서 이번에는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 이렇게 써놨습니다. 그런데 당시 야마토 왜에는 6세기 중반까지 철을 만드는 제출기술이 없어요. 고대에 제출 기술이 없는데 군사강국이라는 거에요. 김현구씨는 야마토 왜가 제출 기술은 없지만 군사 강국이라는 겁니다. 철을 어디서 확보하느냐 백제 근초고왕이 갖다 바쳤다는 거에요. 

심지어는 책에서 이 사람이 뭐라고 써놨냐면 백제 근초근왕이 철정, 철의 덩이쇠 이 덩이쇠를 야마토 왜에 계속적으로 제공하겠다는 보증수표로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 이렇게까지 주장을 하는 겁니다. 

학자 여부를 떠나 가지고 보통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초등학생 보고 역사하라고 해도 ‘제철기술이 없는 나라에 백제같은 고대 강국이 덩이쇠까지 갖다 바치면서 이걸 계속 갖다 바치겠다는 보증수표로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 이렇게까지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 주장을 지금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이나 러시아나 중국이 저 아프리카 어느 소국이 있는데 그 나라는 우라늄이 뭔지도 모르게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 나라가 군사 강국이에요. 미국이나 러시아나 중국이 그 나라에 핵 원료도 갖다 제공해주고 기술도 제공해주고 심지어는 그걸 계속 갖다 바치겠다는 보증수표로 부통령을 갖다 인질로 보냈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게 남한 강단사학계에서 버젓이 주장하는 거고 이런 분이 유수한 대학의 교수로 있고 동북아역사재단에 이사로 있었으니까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된 이후로 계속적인 매국 행위를 하는 게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거죠. 

또 하나는 분국론에 대해서 남한 학자들이 비판하는 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영식이라는 인제대 교수가 있는데 이 사람은 뭐라고 했냐면 ‘분국론은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의 관련되는 임나를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로 비정한 것이 치명적 약점이 된다. 임나는 한반도의 가야 지역을 가르키는 것이 분명하며 일본 열도의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 주장해요. ‘분국론은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에 관련된 임나를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로 비정한 것이 치명적 약점이 된다.’ 이 말을 제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 ‘분국론은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의 관련된 임나를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로 비정한 것이 일본 극우파와 남한 강단사학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렇게 하면 앞뒤가 딱 맞는 말이죠. 

일본열도에는 가야계의 유물 유적이 가득해요. 그런데 그게 전혀 없는 곳에 와서 찾아가면서 거꾸로 말하는 거죠.

김태식이라는 홍익대 교수는 김석형을 “『일본서기』를 비롯한 문헌사료들을 이용할 때 거의 모든 사료를 무리하게 일본열도에서의 사실로 억측함으로써 오히려 한반도내 가야사를 포기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참 읽어 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죠. 

북한의 김석형이나 조희승 박사의 논리는 간단한 겁니다.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임나를 세웠다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가야의 일본열도 진출사를 연구하면 가야사가 더 풍부해지는 거죠? 이게 어떻게 가야사 연구를 포기하는 결과가 되는 거에요? 한반도내 가야사는 한반도내 가야사로 연구하면 되고 가야의 일본열도 진출사를 연구하면 가야사 연구가 더 풍부해지는 거죠. 그런데 이걸 한반도내 가야사를 포기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영식이란 사람은 뭐라고까지 말하냐면 “『일본서기』를 갖다가 현대적 국가 의식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일본서기』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객관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관련 기술을 다시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선은 『일본서기』에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중요하다.” 『일본서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본서기』의 시작으로 지금 보자는 거에요 사료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겁니다. ‘객관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관련 기술을 다시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선은 『일본서기』에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필요하다.’
아니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사료 비판을 하지 말고 『일본서기』 시각으로 보자는 거에요『일본서기』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전부 다 야마도왜의 속국이에요 광개토대왕이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대로 보자는 겁니다. 이런 주장을 버젓이 해요.

김해 지역쪽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정치세력을 만든 것이 고고학적 입증
1980년말 하고 1990년대에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김해 지역의 유적 유물하고 일본 큐슈지역의 유적 유물을 조사해 봤어요. 유적 유물의 흐름을 조사해보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갔는지 큐슈에서 이쪽으로 건너 왔는지 알 수가 있어요. 조사를 해보니까 “거의 10대 1의 비율로 김해 지역쪽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정치세력을 만들었다”라고 하는 게 고고학적으로 다 입증 됐어요, 역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게 다 입증됐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의 극우파들하고 일본 정부 내의 극우 세력들이 방향을 선회했어요. 더 이상 우리 일본인들이 주장해서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밝혔는데 ‘우리가 주장해서는 안먹힐거다 한국애들을 이용하자’ 라고 해서 일본 문부성 장학금, 일본에 A급 전범이 만든 사사카와 재단의 막대한 돈을 이용하는 걸로 전략 수정을 해서 한국의 대학원생들을 일본으로 초청해서 등록금을 전액 대주고 생활비까지 대줍니다. 그 다음에 교수들, 현직 교수들은 일본으로 불러들여 가지고 안식년 같은데 불러들여서 막대한 연구비를 주고 생활비를 다 주는 걸로 노선을 수정했죠. 

그래서 그 결과 일본에서 연수 받고 온 교수들 그 다음에 일본에서 학위 받고 온 사람들이 한국이 워낙 친일 카르텔이 강하니까 일본에서 학위 받고 오면 교수 되기가 아주 쉬워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남한 학계의 교수가 돼서 이런 주장들을 막 쏟아 낸 거에요. 

일본 극우파들 논리가 “봐라 남한 지금 교수들이 한일관계사 연구하는 교수들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거죠. 김현구씨 저하고 재판한 당사자 아닙니까? 재판정에서 한번 제가 직접 질의한 적이 있어요. 

뭐 갖고 질의한 적이 있냐면 369년조, 371년조 보면은 『일본서기』에는 야마토왜에서 사신을 보내 오니까 백제의 근초고왕하고 아들 근구수가 이마를 땅에 대고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절했다. 이렇게 나와요.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뭐라고 나오냐면 “근초고왕이 고구려에 쳐들어가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이렇게 나옵니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이잖아요. 그런데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주장은 자기네만 주장이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와 있는 근초고왕이 고국원왕 전사시킨 기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똑같이 나오고 중국의 북사라든지 위사라든지 하는 중국 기록에도 그대로 나와요. 그러니까 이게 사실인 거죠.

그래서 제가 재판정에서 “아니 기록이 완전 다르지 않느냐? 왜 『삼국사기』 『일본서기』하고 이렇게 다르냐?” 라고 하니까 김현구씨가 하는 말이 자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그분 전공이 한일고대사인데 한일고대사 전공한다는 분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모릅니다. 그럼 그게 한일고대사 전공이라고 볼 수가 있겠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심각한 지경에 와 있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젊은 학자들이 학습 효과가 있어야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일본 극우파 논리 펼치는 사람들은 남한에서 잘나가요. 교수도 쉽게 되고 동북아역사재단이라든지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든지 국사편찬위원회라든지 이런 국책 관련 국가 기관의 막대한 연구비 받고 돈 흥청망청 쓰고 이러니까 젊은 학자들도 ‘내가 갈 길은 저쪽 길이다’라고 해서 그렇게 가는 겁니다.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한국사회의 언론 카르텔

『역사비평』이란 잡지가 있죠. 처음 시작할 때는 운동권인척하는 학자들이 시작했는데 고대사에 관한한 총독부 기관지가 됐는데 두 차례에 걸쳐서 제가 2016년에 1심에서 유죄판결 받으니까 ‘때는 이때다.’ 라고 해서  두 차례에 걸쳐서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이런 주제로 소위 말하는 젊은 학자들 논문을 여러 편 실었죠. 그러니까 한국 사회의 놀라운 카르텔이 드러났어요.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언론 카르텔이 드러났는데 조선일보에서 이들을 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 이렇게 네임을 붙여줬고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 할 것 없이 온통 좌우 언론이 대단히 훌륭한 학자들이 나온 것처럼 엄청 띄웠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 주장은 ‘조선총독부 역사학 만세 조선총독부에 소속돼 있던 우리 일본인 선생님들은 영원히 우리 역사관을 지배하신다.’ 결국 그 얘기한 거에요. 

 그 중에 한 사람이 위가야란 사람인데 젊은 필자가 『욕망 너머의 한국고대사』 이런 여러 사람이 쓴 책에서 분국설에 뭐라고 했냐?

김석형의 분국설은 북한에서는 아직도 정설이며 한국에서도 모자란 복제품 수준의 주장이 이따금씩 제기된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학설로는 생명력을 거의 상실했다. 그의 학설이 성립하는 결정적인 근거였던 일본 열도내 조선식 산성이 6~7세기때 유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뭐냐면 김석형의 분국설은 끝났다는 겁니다. 끝났다라고 하려면 그 설 주장한 사람들이 철회를 해야 되는 거죠. 이렇게 수많은 김석형의 책, 조희승의 책 이 수 많은 책들 이 많은 책들이 분국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분국설을 가지고 일본하고 북한 사이에 국제학술대회도 열렸어요. 

국제학술대회 일본측 대표가 누구냐면 기마민족설을 주장했던 도쿄대 교수 에가미 나미오가 일본측의 대표 학자로 참석을 했어요. 그런데 이런 현실은 다 무시하고 ‘김석형의 분국설은 학설로서 생명력이 끝났다. 그 근거가 일본 열도내 조선식 산성이 6~7세기때 유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떻게 바꾸면 되냐면, ‘일본열도내 조선식 산성을 일본의 극우파 역사학자들은 6~7세기대 유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자기들 속마음하고 맞는 이야기죠.
키노조 산성, 북한 학계에서 5세기에 가야계들이 세웠다고 하는 키노조 산성에 대해서 일본에서 발간한 가장 방대한 『일본사 대사전』이 있습니다.거기에서도 뭐라고 써놨냐면 ‘가야는 5세기 건립했다. 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라고 일본인 책에도 써놨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거꾸로 주장하는 거죠.

그래서 위가야가 주장한 걸 제대로 사실대로 하게 하려면 ‘일본극우파의 임나가야설은 일본과 남한 강단사학에서는 아직도 정설이며, 한국에서도 모자란 복제품 수준의 주장이 대거 제기된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이제 북한의 분국설로 생명력을 상실했다. 일본열도에는 무수히 많은 가야계의 유적 유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명실상부하게 맞는 말이죠. 

임나가야설은 남북한 분단 상황을 악용한 분단사학
그러니까 일본극우파들과 남한강단사학의 임나가야설과 북한학계와 남한민족사학계의 일본열도내 분국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결론은 간단한 겁니다. 연구를 해보면은 결론은 명확히 나와요. 단지 남한 강단사학이 남북한 분단 상황을 이용해 가지고 북한역사학이 알려지는 걸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고 그래서 북한역사학이 마치 이런 식의 거짓말 김석형의 연구가 학설로서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하는 거짓말로 계속 아직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남한 강단사학이나 일본 극우파의 임나가야설은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악용한 분단사학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고대사 분야에서는 우리가 북한학자들 하고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분단 체제가 계속돼야 자기네 학설이 계속 유지가 될 수 있는 거고 우리는 이제 남북한이 최대 공약수를 넓힐 수 있는 부분은 계속 넓히는 쪽으로 우리가 가는 걸로 남북 화해를 해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역사 특히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북한학자들이 많이 연구를 해놨기 때문에 그 북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우리가 충분히 수용하고요.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하는 건 아니고 비판할 점이 있으면 비판하면서도 남북한학자들이 서로 통일이란 대의를 놓고 역사학의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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