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culture 역사
삼국사기에서 갑자기 사라진 가야 미야자키현 배낭여행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고분군

이덕일TV  삼국사기에서 갑자기 사라진 가야 미야자키현 배낭여행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고분군 https://youtu.be/uYDF-UmhxvY

가야의 건국시기
이번에는 가야의 건국 시기에 관하여 한 번 말씀드리겠는데요. 한국에서 역사를 하다보면 참 희한한 일들이 많아요. 가야 건국 시기, 간단한 겁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AD42년에 가야가 건국했다’라고 『삼국사기』에 나와요.『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이 42년에 건국했다’ 라고 또 『삼국사기』하고 똑같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보면은 가야 토기가 있어요. 가야 토기는 신라 토기하고 다른 특성이 있는데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위원장 하셨던 안춘배 교수님이란 분이 있는데 가야 토기를 전공해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인데 이 분은 1세기 무렵에 낙동강 유역에서 이미 신라 토기와는 다른 가야 토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똑같이 ‘서기 42년에 가야가 김수로왕이 건국했다’라고 돼 있고 고고학적으로 가야 토기가 나오고 있고 그리고 실제 수로왕릉이 김해에 있죠.

남한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가야 건국 시기
얼마 전에 어떤 식민사학자가 ‘수로왕릉 가짜다’라고까지 이야기해서 여러 사람들이 분개하는 걸 봤습니다만. 이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왜 저럴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가야 건국 시기는 사료로 보나 유물로 보나 전부 다 AD 1세기라고 나와 있어요. 그런데 유독 남한강단사학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설명을 안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죠.

남한 강단사학에서는 ‘3세기 말에 가야가 건국됐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말을 단순하게 안 해요. 단순하게 ‘3세기 말에 건국했다’ 이러면 일반 국민들도 쉽게 ‘아 왜 그러지?’라고 문제제기 하니까 처음에 이야기하는 거 보면 BC 2~3세기부터 복잡하게 이야기합니다. 복잡하게 막 이야기해서 사람들 혼을 빼놓은 다음에 그다음에 ‘3세기 말경에 구야국에서 뭐가 발전해서 가야가 건국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나라는 국민들도 불쌍하고 특히 학생들이 많이 불쌍한 거예요. 정확하게 나와 있는 사료에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와있고 유물이 유적, 유물이 나와 있으면은 ‘가야는 42년에 김수로왕이 건국했다’라고 하면 학생들도 외우기로 좋고 공부하기도 좋은데 이 사람들이 역사학자들이 쓴 거 보면 도대체 무슨 얘기하는지 알기가 대단히 힘들게 써놨으니까. 학생들이 참 불쌍한 거죠. 그런데 

이것 뿐만 아니라삼『삼국사기』에 보면은 신라의 탈해이사금 21년인데요. 이때는 서기 77년이에요. 이때 가야와 신라가 충돌한 기사가 나와요. 그래서 ‘신라가 가야 군사 천 명을 목 벴다’라고 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때 이미 42년에 건국이 됐고 77년에 신라와 격렬하게 충돌해서 1000명이 전사하는 그런 전투까지 치렀습니다.

그런데 가야국이 없다는 거예요. 한국에서 역사공부 하다보면 참 희한한, ‘그 역사학자들 머리 구조가 참 희한하다’라는 부분하고 또 하나는 ‘공부를 너무 안 한다’라고 하는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는데요. 한국은 사학과에서 제가 학사, 석사, 박사를 다 역사학에서 했는데요. 한국은 사학과에서 책을 보지 말라 그래요. 기존에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강단사학 그 책 외에는 보지 말라 그럽니다. 참 웃기는 논리죠. 전 세계에서 이런 역사학 하는 데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어느 대학 대학원의 관여를 하게 됐는데 거기에 저희가 한국 고대사 논문을 10여 편을 묶어서 코로나도 있고 하니까 재택 수업용으로 논문을 읽고 레포트를 제출하게 했는데 거기에는 강단사학자들 논문도 있고 그다음에 일반 민족사학계 논문도 있고 북한쪽 논문도 다 묶어서 수록했는데 사전 설명은 전혀 안 했어요. 어떤 대학원생이 연락와서 그 논문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이거 이상하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저희는 그냥 다 제공합니다. 당연한 거 아녜요. 당연히 제공해서 이 논리, 저 논리 다 보고 나서 하나의 관점을 세우는 게 역사학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전 세계가 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남한 강단사학은 안 그래요. ‘북한 거 보면 절대 안 된다. 윤내현 교수 거 보면 안 된다. 이덕일 거 보면 안 된다. 절대 보면 안되고요. 이것만 봐야 돼.’ 정상이냐 이거예요.

정상이 아닐 수밖에 없는 게 『삼국사기』, 『삼국유사』 유적 유물에 가야가 1세기에 건국했다고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3세기 말에 건국했다고 주장해야 되니까. ‘1세기에 건국했다’라고 주장하는 책들은 보면 안 되는 거죠. 그 책도 논리가 있으니까. 

신라의 지마이사금祗摩泥師 때 서기는 115년인데요, 이때 가야가 신라에 쳐들어옵니다. 지마이사금이 장수를 보내 막게 하고 본인이 직접 10000명의 정병, 정예로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또 싸워요. 이렇게 무수히 많은 사료들이 있는데

남한 강단사학은 ‘가야는 3세기에 건국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책 제목은 멋있게 했어요. 700년 가야사. 이렇게 700년 가야사라고 해놨으면 가야가 562년에 망하니까 700년이라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이전에 BC 2세기부터는 시작하는 걸로 해야죠. 2세기나 3세기.....제목은 그렇게 달아놓고 막상 내용을 보면 3세기 말에 시작해요. 3세기 말에 시작해서 562년에 망했으면 300년 가야사 하든지. 400년간 가야사 해야지. 제목은 700년 가야사로 붙여서 일반 국민들이 볼 땐 마치 가야사가 700년 된 것처럼. 제목에서 현혹을 시켜놓고 막상 내용에 들어가 보면 300~400년 가야사를 축소시키는.

가야 건국시기 왜곡의 이유 : 임나일본부
왜 이런 문제가 나오냐면 결국 전부 다 임나일본부 때문이에요. 일본인들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거는 전부 다 임나일본부설 때문에 역사 왜곡을 하는 건데요. 왜냐면 『삼국사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 『삼국사기』에서 신라와 가야가 격력하게 충돌하는 기사가 계속 나오는데 또 신라가 강력한 고대 국가로 나오고 백제가 강력한 고대 국가로 나오죠. 그러면은 ‘야마토왜가 한반도에 진출해서 가야를 정벌해서 임나를 설치하기가 힘들다’라고 하는 결론이 나오니까. 삼국사기를 가짜로 몰고 ‘신라, 백제, 가야 건국 기사가 전부 조작됐다. 그건 수백 년 뒤로 와야 된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하는 것이 전부 다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들이죠. 

이 주장의 핵심이 뭐냐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서기 369년에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거기에 임나를 설치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은 369년에 가야의 왕이 바뀌어야 되지 않습니까. 삼국유사 가락국기 보면은 369년에 그냥 이시품왕이 왕으로 계속 있어요그러다가 407년까지 왕으로 있다가 407년에 자기 아들 질지왕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삼국유사의 시각으로 보면은 ‘369년에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를 설치했다’ 하는 따위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나죠.

그러면은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파들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이런 거에 대한 대응은 간단한 겁니다. 하나는 침묵하든지 그 구절은 없는 것으로 치든지. 또 하나는 ‘그 구절 틀렸다 가짜다’라고 모는 이런 걸로 ‘야마토 왜가 기어이 한반도 남부에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만약에 369년에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세웠으면은 『삼국사기』 「신라본기」나 「백제본기」에 반드시 그 얘기가 나와야 돼요. 그렇잖습니까? 200년 이상이나 한반도 남부 가야를 점령했으면 점령한 신라나 백제 입장에서 저 야마토 왜에서 건너와서 가야를 점령했으면은 그걸 신라나 백제 입장에서 그냥 두고 볼 건지 쳐들어 갈건지 뭐 어떡할 건지 뭐가 입장이 나와야 되잖아요. 전혀 아무런 기사도 안 나와요. 그러니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요.

거꾸로 『삼국사기』에 보면은 212년부터 481년까지 269년 약 270년 동안에 가야 관련 기사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삼국사기』에...이 시기 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신라와 가야가 우호 관계를 구축해서 기사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또 하나 유력한 가능성은 이 시기가 바로 일본왕가에 시조의 발상지라는 미야자키현 사이토바루 고분군에서 3세기 말부터 야마토 왜에 왕가의 고분이 축조되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그 무렵에 가야계가 바로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일왕가의 기틀을 만들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