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박은식 평전 국혼의 지사┃김삼웅 지음. 채륜 펴냄. 318쪽. 1만9천원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1859∼1925)의 평전이 나왔다. 구한말 보수적인 유학자에서 자유민권사상가로 변신해 역사학자, 언론인, 교육자, 독립운동가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백암의 인생행로를 상세하게 서술했다.
청일전쟁·을미사변·아관파천 등의 위기를 겪은 후, 박은식은 독립협회에 가입을 기점으로 활발하게 언론활동을 병행했다. <황성신문>을 창간·보급에 힘을 쓴 것도 박은식이다. 영국인 베델의 <대한매일신보> <서북학회월보>의 주필이 돼 애국적인 사설을 쓰기도 했다.
1910년 을사늑약 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일제의 침략과정을 폭로하는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다. <대동고대사론> <동명성왕실기> <발해태조건국지> 등의 역사책도 냈다. '한국통사'가 국내로 반입돼 널리 읽히자 일제는 책을 수거해 소각하고 대신 어용 사학자들을 동원해 '조선반도사'를 펴내기도 했다.
백암은 1921년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을 거쳐 1925년 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은식은 이승만이 고집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령 중심으로 내각책임제를 선택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그리고 국무령이 선출되고 안정을 찾게 되자 아무런 미련없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해체위기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던 백암 선생은 이후 건강 악화로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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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은 서거 직전 유언을 남겼다.
"나의 병세가 금일에 이르러서는 심상치 않게 감각되오. 만일 내가 살아난다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 동포에게 나의 몇 마디 말을 전하여 주오.
첫째, 독립을 하려면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오.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 방략이라도 쓸 수 있어야 하오.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 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 동지간에는 애증친소(愛憎親疎)의 별(別)이 없어야 하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라 우리가 금일까지 무엇이 아니 되니, 무엇이 어찌하여 아니 되니 함은 통(統)히 우리가 일을 할 때에 성의를 다하지 못한 까닭이오, 아니 될 수야 어찌 있겠소."
본인의 병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조국독립을 걱정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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