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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정제일(야쓰이 세이이치) 창녕 가야 유물 일본으로 반출

1919년 독립만세의 함성이 한반도에 충만한 바로 그때,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편성을 나눠 전국의 고분발굴에 나섰다. 동경대 교수 흑판승미는 고령, 김해, 조선사 편수회 금서룡과 동경대 교수 조거용장은 경상도 각지, 동경대 교수 매원말치와 병전경작은 성주 고령 창녕, 원전숙인은 경상도 각지, 곡정제일(야쓰이 세이이치)은 고령 성주 함안 창녕 김해를 맡았다. 이 일단의 학자들이 한국의 귀중한 지하유물을 발굴하여 극히 일부분만 남겨놓고 모두 일본으로 운반해 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발굴량과 반출량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방도가 없다 (문정창, <일본고대사>)

야쓰이 세이이치 (谷井濟一, 1880~1959)

 

창녕 박물관에 있는 창녕 고분 발굴 조사연표

여기에는 그냥 곡정제일(야쓰이 세이이치)이 고분을 발굴하고 유적분포도 작성하고 교동고분을 발굴하여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입고한 것으로만 나온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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