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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E 157년에 임나가 마한에 조공했다는 역사기록의 의미역사집략(歷史輯略)이 알려주는 임나의 비밀

아직도 우리 학계는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사관이고 학설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역사집략의 이 문구가 있다. 역사집략(歷史輯略)은 1905년 김택영이 단군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의 통사를 서술한 역사서이다.  

역사집략 마한기를 보자

BCE 157년 임나가 마한에 조공을 한다. 그러니 임나는 가야인 것으로 알고 있는 김택영은  의아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찌 삼한 초기에 이미 소위 임나라는 하나의 나라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은 것이다.  이렇게 의문을 품었다는 것은 이 서기전 157년의 어느 신뢰성 있는 문헌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임나는 바로 대마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백일사에는 "任那者 本在對馬島西北界"라고 하여 대마도의 서북쪽의 소국에서 임나가 출발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對馬乃對馬韓之義也  『공화일용공부약집(空華日用工夫略集)』

이 당시 대마도는 '마한'을 마주 대하고 있다고 해서 대마도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니 지금 교과서의 삼한 위치로 보면  대마도에서 배를 타고 바로 올라가면 진한 혹은 변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한반도 서쪽으로 알고 있는 마한일까?

당시 마한은 한반도 전체를 영역을 가진  마한이었습니다 . 신채호의 전삼한에서 마한은 한반도,진한은 만주,번한은 요서지방 그리고 이후에 후삼한으로 한반도 남쪽에 마한,진한,변한이 형성된다.

그러니 대마도가 마주 대한 나라는 전삼한 시절의 마한이 된다. 대마도의 북서부에 소국 임나가 있었다. 그리고 김택영의 의문처럼 임나가 가야가 아니라는 것을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가야건국 훨씬 이전에 임나라는 명칭이 존재했으니 가야와 임나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물론 학계는 역사집략(歷史輯略)이 1905년 정리된 책이니 그걸 핑계로 하여 이 문헌기록을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가야는 임나가 아니라는 증거들을 제끼고 계속 기득권을 형성하면 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임나가 가야와 동일국이 아니라는 것은 임나의 건국시기,멸망시기 등 여러 조건을 볼때 명약관화한 일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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