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 읍에서 군 생활을 했다. 어느덧 과거가 되어버린 처음 남방한계선(GOP)지역을 갔을 때, 나는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에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젊은 사람이라고는 죄다 군인들 밖에 없는 곳,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명예로울 수 있는 곳, 음식점에 들어가면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은 북한과 매우 가까운 최전방 지역들이다.
거진 읍에서 아래로 차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속초가 나온다. 그리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강릉이 나오는데, 그곳에 3.1독립만세운동기념탑이 있다. 물론 강원도 강릉시, 삼척시, 양양군, 원주시, 춘천시 등에도 다양한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다. 다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 주변에 이러한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이동할 때 정신 없이 학원숙제를 풀고 있는 모습만 왜 내 눈에는 보이는지 그것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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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긍호 독립운동가 |
강원도를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그는 1897년에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고, 1907년 강원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1908년까지 약 1년간 1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뤘다. 3일에 한번 꼴로 총격전을 벌였다는 말인데, 열악한 무기와 보급량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않고 일제와 게릴라전을 벌인 의병장, 그의 이름은 민긍호 독립운동가다.
1897년 군에 입대한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갑자기 우리 조국의 자주적 외교권과 재정권이 박탈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더욱이 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인물(오늘날 대통령)을 그 나라 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냥 직위 해제시키고 인질로 끌고 갔으며 국가와 국민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방력 마저 없애버림으로써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완전히 식민지화 하는 행동이었다.
당시 군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졸지에 직업이 사라졌으며,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들 중에는 이러한 일제의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무장투쟁가들이 생겨났고 제 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권총으로 자결한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제1대대 장병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 봉기는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이때 민긍호 역시 원주진위대 병사들을 지휘하여 봉기했다.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에 복종할 수 없다."
당시 민긍호가 모집한 병사들에게 한 말이다.
민긍호의 활동 무대는 강원도 원주였다. 우편취급소, 군아, 경찰분견소 등을 집중적으로 습격하여 원주읍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 수비대 부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여 수십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여 격퇴하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일본군 사령부는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2개 중대, 공병 1개 소대를 투입하여 공격을 감행했다. 놀라운 것은, 민긍호의 의병부대는 서울에서 올라온 일본군을 다시 한번 괴멸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활약이 전국적으로 퍼지며 민긍호는 명성을 얻게되었고 당시 가장 큰 의병부대를 규합해 이끌고 있던 이강년 의병장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약 70여차례의 추가적인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군인시절 배운 다양한 병법 지식을 활용하여 화력과 기동력을 높이는 의병편대를 구성하였고 다양한 전력과 작전을 펼쳐나갔다. 이후, 원주, 여주, 이천, 홍천 일대에서 총 100여 회의 전투를 벌여 큰 전과를 올리게 된다.
1908년, 2월 27일, 민긍호가 직접 지휘하는 의병부대는 원주 강림 박달치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 및 경찰대와 접전을 벌이게 되었고, 밤을 새며 이어지는 장기전을 벌였지만 교전이 길어지면서 탄환이 바닥났고 결국 일본군에게 촌락을 점령당하게 된다.
민긍호는 당시 일본군의 특명에 따라 생포되었고, 민긍호의 휘하에 있던 중간 지휘관들은 바로 그날 밤 민긍호를 구출하기 위해 일본군 숙영지를 공격하는데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전력을 발휘한다. 당시 부족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부대원 모두가 "우리 대장 민씨는 있는 곳에서 소리 지르라!"고 외쳐대며 사생결단의 자세로 싸웠고, 그들의 의지와 눈빛이 얼마나 강렬하고 압도적이었으면 일본군은 민긍호를 그 자리에서 사살 한 뒤 모두가 도망가버렸습니다.
민긍호의 마지막은 이러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하얗게 불태웠던 의병장.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잊혀진 영웅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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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 있는 때에 내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 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가 8역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나라를 찾는 데 있으므로 강한 도적 왜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하여 흙 속에 묻히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를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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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