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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문 속의 '임나가라'는 어디일까?

광개토태왕비문에 나오는 '임나가라'는 어디일까? 이를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이라며 임나일본부설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대마도이거나 북큐슈지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대두되고 있다.  『융합과학으로 본 동북아고대사』 책에 나온 박덕규의 글에서 임나가라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일부를 발췌하였다.
 

'임나가라'에 대해서는 경자년(400년) 기사에 나온다. 광개토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서 신라를 구원하는데 왜군이 퇴각하여 급히 뒤를 쫓아 가 항복시킨 곳이 “임나가라의 종발성" 이어서 이 문구가 '임나가야"설의 근거가 되었다.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官軍方至 倭賊 □□背急追 至任那加羅從城 城卽歸服. 安羅人成兵(10년(400년)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통해 신라성(新羅城)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왜가 가득하였다. 관군(軍)이 바야흐로 도착하자 왜적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

지금까지 '종발성'이 있는 '임나가라'를 가야지역으로 비정한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본기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왜군이 경주를 침략했다가 퇴각할 때 신라군이 그 배후를 추격하여 승리한 기록이 두 곳의 기사에서 보이는데, ①나물이사금 38년(393) 왜군이 싸우다가 퇴각하자 기병 2백과 보병 1천으로 독산(獨山)까지 추격하여 물리친 기사와 ②실성이사금 4년(405) 퇴각하는 왜군을 기병으로 빠르게 추격하여 독산(獨山)에서 기다 렸다가 격파하는 기사가 그것이다.

왜군이 퇴각하다가 패한 곳이 모두 독산이며 지금의 경북 포항시 신광면 지역이다. 즉 왜군은 배를 타고 경주의 동북쪽인 포항 앞바다로 들어와서 육로로 이동하여 경주를 공격했다가 퇴각할때 다시 육로를 거쳐서 포항 앞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임나가라 즉 가야쪽이 아니라 신라의 동북쪽 해안이다. 그렇다면 배를 타고 출발했던 왜군의 본영은 어디일까? 실성이사금 7년(408) 기사를 보면 전해 3월과 6월에 두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왜군의 본영을 선제공격하는 계획을 세우는 기사가 보인다.

“왕이 왜인(倭人)이 대마도(對馬島)에 군영을 두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 두어 우리를 습격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일어나 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예 군사를 뽑아 적의 군영을 격파하고자 하 였다.”

이를 통해 보면 당시 왜군의 군영은 대마도(對馬島)이고 왜군의 군영을 격파하기 위해 신라에서 바다를 건너 공략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영락 10년(400년) 고구려 원정군이 신라에 도착하자 왜군이 급하게 퇴각했던 경로는 이전에 두 번의 경우와 같이 '경주-독산'으로 추정된다. 이 곳은 신라의 동북 지역이지, 신라의 서남 지역, 즉 가야 지역이 아니다. 만약, 가야가 임나이고 왜가 임나에 주둔해 있었다면 굳이 임나의 반대 방향인 독산으로 퇴각할 이유가 없다. 대마도에서 포항 앞바다까지는 ‘대마 난류'가 흐르기 때문에 연안해류를 타고 배로 이동해서 경주를 공격하고 퇴각했으며, 고구려 원정군이 왜군의 뒤를 쫓아서 항복시킨 '임나가라 종발성'은 그들이 출발했던 대마도이거나 더 후퇴하여 본거지인 북규슈일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군의 일본열도 상륙설에 대해서 남창희는 당시 해군력이 우수했 던 백제는 대륙 국가 고구려를 괴롭히는데 대한해협 남쪽 후방 지원 세력 을 최대한 이용했을 것이고, 고구려가 백제의 전략적 이점을 상쇄하기 위해 서는 최소한 대마도를 점령하여 후방 지원을 차단하거나 혹은 최대한 열도 본토의 전략적 중심을 점령해야 전쟁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광개 토태왕 원정군의 일본 열도 상륙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1

이병선은 고구려 원정군의 대마도 정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대마도인 藤定房의『對州編」에서 인용한 『山家要約記』의 “對馬島者 高麗國之牧, 新羅住之(대마도는 고려가 다스렸고, 신라인들이 살았다)”는 기록과 태백일 사 고구려본기 영락 10년에 三加羅는 모두 우리[高句麗]에게 돌아오게 되어, 이로부터 海陸의 諸倭는 모두 任那에 통합하게 되었다. 十國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는데, 聯政으로 하였다.”는 기록을 제시했다. 

박덕규, 『융합과학으로 본 동북아고대사』 32쪽 ~ 36쪽, 임나일본부와 백제,왜의 관계에 대한 소고, 대한사랑 출판, 2021년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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