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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 ⑤삼랑성과 대웅전

삼랑三郞이란 본시 삼신을 시종하던 랑郞이니 본래 배달의 신하配達臣이었다. 또 세습적으로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다. 밀기密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떼죽음을 당하면 출향하지 아니하고 한 곳에 합장하여 지석支石을 만들어 표를 하였다. 뒤에 이것이 변하여 단壇을 만들고 지석단支石壇이라 하였다. 또한 제석단祭石壇이라고도 하였다. 산정에 구덩이를 파서 성단城壇이 된 것을 천단天壇이라 하였으며 산골에 나무를 심어 토단土壇을 이룬 것을 신단神壇이라 하였다. 지금 승도僧徒들이 혼돈하여 제석帝釋을 가지고 단壇이라고 칭한 것은 옛 것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守護하고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고 하였다.”

『한단고기』에는 본래 삼신시종지랑三神侍從之郞이라고 하였고, 또 고려 팔관잡기에는,

“삼랑三郞은 배달신倍達臣이다.

심어 가꾸고 거두어 재물을 맡은 이를 업業이라 하고,

은혜로서 따르게 가르치는 이를 낭郎이라 하고,

무리들이 공을 이루게 하는 이를 백伯이라 하였다.

곧 옛 발신도發神道이다.

능히 강령예언降靈豫言하여 신의 이치를 누누이 적중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 혈구穴口(강화도)에는 삼랑성三郞城이 있다.“

라고 하였다. 이 삼랑성은 곧 강신예언降神豫言하며 임금에게 자문역할을 하는 벼슬인 삼랑들이 자면서 지키는 곳이다. 낭郎은 곧 삼신 수호의 관직이다. 삼시랑은 삼신을 받들던 낭도를 일컫는 것으로 삼시랑들이 삼신을 모시던 자리에 나중에 전등사를 지었다. 강화도 전등사의 삼랑성은 위의 설명과 같이 삼랑직三郞職에 있는 사람 즉, 삼시랑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삼랑들은 삼랑성에 기거하면서 단군이 마니산 참성단에 천제를 지낼 때 필요한 제물이나 의식 절차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삼랑三郞이란 직책명이자 강신 예언하는 책사로 임금의 자문 역할을 하는 벼슬이지 ‘단군의 아들 셋’이란 뜻이 아니다. 일본인의 이름에 태랑太郞, 차랑次郞, 삼랑三郞 등, 랑郞자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화랑도花郞徒의 영향이 있었겠으나 말 뿌리를 더 소급해보면 강화도 삼랑三郞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필자의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성질이 좀 별나고 짓궂은 아이들을 면박줄때 ‘아이고 이 삼시랑아!’라고 하던 말도 바로 여기에서 온 말일 것이다.

『태백유사』에는 “불상佛像이 처음으로 들어와 절을 짓고 대웅大雄이라 하였다. 이는 승도僧徒들이 불교이전의 고사古事를 답습하여 그대로 부르는 것이지 본래는 불가의 말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한웅桓雄을 대웅大雄이라고 일컬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大’와 ‘한’은 같으며 대로大路나 한길이나 같은 것이다. 따라서 대웅전大雄殿이란 한웅전이며 불교 유입 이전부터 한웅천왕을 모신 수두제단이었지 원래 불상을 모신 곳이 아니었다. 원래 불교의 것이었다면 대웅전이라고 하지 않고 석가전이나 부처전이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래 불교도래(기원전372년) 이전에 이미 한웅천황을 모신 한웅전(대웅전)이 있었고 그 한웅전은 국선國仙 낭도들이 수도하던 수도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안의 닫집(다섯집)도 바로 단군때의 5개 부족장인 오가五加(家)를 상징하고 있다. 오가는 당시 5개 행정부처의 신하. 도, 개, 걸, 윷, 모의 다섯 부족장을 말한다. 이렇듯이 대웅전의 닫집도 단군때의 오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웅전 뒤 윗쪽에는 이 나라 터주신인 산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그 주위에 칠성당, 독성당, 용왕당, 조왕당, 선왕당 등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본래의 인도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당들이 자리잡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의 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 현상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가람배치 현상에서 보면 석가의 불교가 우리의 토속신앙을 포용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수도장에 불교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조상들의 포용력과 한恨을 읽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불교나 유교, 도교 이전의 우리 문화는 어떠하였을까? 중국측의 기록인 『산해경』, 『전한서』 등의 기록에 의하면 유, 불, 도의 문화가 유입되기 이전 시대에 서역(중국 등)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일러 동방의 군자국이라고 하였다. 즉 동방에 문화와 경제의 선진국(군자국)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정통의 고유문화는 그들보다 선진문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석가 아닌 한웅천왕을 모신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 칠성, 독성, 용왕, 조왕신 등을 모시고 제천 수련하던 우리 고유문화는 대단한 선진문화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최고운이 말한 만교萬敎의 시원 사상인 현묘지도玄妙之道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동양사상과 문화의 발상지가 배달국과 단군조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북경을 비롯하여 대웅전의 현판이 분포되어있는 지역은 모두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이로 미루어 확인할 수 있다.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약력】

#훈민정음연구소장 #한배달부회장 #한국땅이름학회명예회장 #국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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