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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신화는 문화의 뿌리우리 신화에는 하늘의 마음과 땅의 현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자만이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강열한 메시지

신화학자 프레이즈 박사의 저서 “황금가지(金枝)”에서 신화는 문화의 뿌리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서구문화의 뿌리를 이태리의 숲속 거울같이 맑은 ‘네미’호수로 정의하고 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처절한 투쟁은 철저히 ‘정글’법칙이 통용되는 힘의 세계이다. 칼을 뽑아들고 시대를 정복한 자가 왕이다.

 왕의 후보자는 왕을 죽임으로서 왕이 될 수 있다.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적용될 뿐이다. 결국 왕이란 살인자며 또한 살해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처럼 유럽신화의 원형은 권력을 향한 갈등과 피의 투쟁사를 여과 없이 투영시키고 있다. 이 숲이야 말로 서구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희랍 신화에도 아버지를 살해하는 근친살해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왕을 죽이고 임금이 된 크로노스는 자신도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식을 낳는 데로 삼켜 버린다.
   
 그러나 우리 신화는 전혀 다른 화소를 갖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갈등이나 권력투쟁도 전혀 없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조화에서 생겨난 신비로운 존재로 본다.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는 모두 천강(天降)신화로 이루어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나 해모수가 천강신화의 주인공이고 웅녀와 유화가 땅의 신의 대리인이었다. 이런 신화요소는 우리민족의 원형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이런 신화소는 박혁거세와 알지신화로 삼국시대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 민족신화의 원형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융합하고 조화되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인 “한”사상으로 골격을 이룬다. 하늘을 숭상하고 이 땅의 모든 자연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도 이런 신화적 발상에서 비롯했다.

 혁거세와 알지신화에서는 간접화법을 쓰고 있다. 알로서 태어나거나 황금 궤 속에서 태어나며 서광이 비치고 뭇 짐승과 새들이 축가를 불렀다는 것으로 보아 천제의 아들임을 충분히 은유하고 있다.

 신화는 인간존재의 기본적인 양태를 말하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한 상상적 창조물일수 있고 또한 창조의 원천일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서 당대를 살아갔던 옛 사람들의 사고의 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고대 탄생신화의 리얼리티(reality)는 우리들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이고 그 메시지는 바로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인 ‘한’사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정신적 고향은 대자연이다. 하늘이고 땅이다. 그대로 축복이고 화합이요 통합인 아름다운 왕의 군림이었다. 이런 신화소는 ‘인간은 부러운 대상“이며 신도 인간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았다.
 살벌한 ‘네미’숲 신화나 기독교 창세기에서 보여주는 죄를 짓고 쫓겨난 인간,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부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따라서 우리 신화에는 하늘의 마음과 땅의 현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자만이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강열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인간이란 하늘과 땅의 이미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피비린내 나는 칼과 모반과 살부(殺夫)의 정글법칙이 통용되는 “네미"숲속과 같은 서구적인 신화원형과는 하늘과 땅만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는 천지인합일의 신화로 하늘과 땅과 모든 사람이 하나로 통합하는 ‘한’문화로 형성된 것이다. 천부경에서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이란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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