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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교 문화』 도교와 의술, 不老不死

중국 고대의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기원한 동양 의학은 이후 유학 및 도교의 철학적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다. 특히 도교는 불로불사不老不化하는 신선이 되는 것이 주요 목표였고, 종교의 성립과 전개 과정에서도 의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신선되기 위한 양생술養生術과 의술과의 관련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에 『황정경黃庭經』에 의지하며 연단수련煉丹修鍊한 도사 이중약李仲若(?~1122)이 숙종을 치료할 정도로 도교 의술로 명성이 높았다. 또 무신집권기 임익돈任益惇(1163~1227)의 묘지명은 도사와 승려가 참여한 주술적·심리적 치병 의식儀式을 전하고 있다. 

도교의 의술을 기록한 임익돈의 묘지명 任益淳墓地銘 고려 高麗35.0×49.0cm 1981년 입수, 신수 5815Epitaph of Yim Ik-don containing Taoist medicine Stone Acquired in 1981, ssu 5815

조선시대에는 16세기 무렵 사대부들 사이에서 도교적 양생법이 상당히 확산되었다. 김시습의 「용호론」, 이이의 「의약책」, 이황의 『활인심방』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도교의 불로장생이나 연단, 등선登仙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심신수양과 건강관리를 위해 도교적인 수련법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이이는 도교에서 개발한 창양昌陽·황정黃精처럼 연년익수延年益壽(수명을 늘여 나감)한다는 약물의 사용은 받아들일만 하다고 하였다. 또한 정렴鄭碟은 그의 용호비결(일명 『북창비결』)에서 정기精氣를 머무르게 하여 풍사風邪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하는 양생법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이러한 도교적인 양생론은 『동의보감東醫寶鑑』(1613)을 비롯한 조선시대 의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허준 許浚 (1539~1615)조선 朝鮮32.5×22.0cm 1999년 입수, 신수 16653Dongeuibogam, a book of Korean Medicine by Heo Jun Paper Acquired in 1999, ssu 16653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許浚(1546~1615)은 '도가道家는 맑고 고요히 수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의학에서는 약이藥餌와 침구鍼灸로 치료를 하니, 이것은 도가는 그 정미로움(精)을 얻고 의학은 그 거친 것(粗)을 얻은 것이다.'라고 하여 도교적 양생을 근본으로 하고 의학을 가지로 보는 도본의말道本醫末의 입장을 밝혔다. 

즉, 몸의 생명력을 기르는 양생술이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의학보다 우선함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동의보감』의 구성에도 반영되어, 맨 앞의 「내경편內景篇」에서 몸의 근본을 이루고 양생의 도와 가장 밀접한 요소인 정情·기氣·신神, 혈血과 오장육부 등을 먼저 설명하고 근골筋骨, 기육肌肉, 혈맥, 피부 등 몸의 형체를 이루는 것을 다룬 「외형편外形篇」과 각종 병에 관한 내용인 「잡병편雜病篇」, 병의 치료와 관련된 「탕액湯液」과 「침구鍼灸」 등을 그 뒤에 차례로 배치하였다. 

「내경편」은 『동의보감』의 이론적 근간에 해당하는데, 오장신五臟神 관념이나 내단 사상과 같은 내용, 내경이라는 명칭 등은 도가서인 『황정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정·기·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체관을 정립한 양생론과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에 강한 의학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하나로 통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의보감』 이외에도 정유인鄭惟仁의 『이생록頤生錄』, 이창정李昌廷의 『수양총서유집壽養叢書類輯」 을 비롯하여 도교적인 관점에서 쓰인 의서들이 많이 편찬되었다. 이처럼 도교의 내단 사상과 양생론은 조선시대 의술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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