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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국제전시 “북위” 도록 발간-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 공동 기획의 국제교류전 도록

 -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빛내는 한국과 중국 5개 박물관의 공동전시 도록 발간
 - 중국 뤄양박물관·다퉁시박물관·후룬베이얼박물원 소장 북위 유물 97점 수록
 - 중국 최초로 소수민족인 선비 탁발부가 중원에 세운 국가 ‘북위’의 역사 조명
 - 국내외 전문가가 북위와 백제의 관계 등을 다룬 도록 논고· 칼럼 수록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유병하 관장)이 한·중 수교 30주년(2022)과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맞아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 개막한 국제교류전시 도록을 발행했다.

  한성백제박물관과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의 학예 인력이 함께 집필하였으며,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북위 역사와 전시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2월 27일(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기간에 맞춰 도록이 출판되었으며, 도록은 서울과 부여의 상징성을 담아 2가지 형태의 표지로 제작되었다. 

 이번 도록은 크게 4부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그 외에도 국내외 전문가의 논고 4편과 다양한 칼럼이 실렸다. 

 1부 제목은 ‘선비 탁발부: 발원에서 북위 건국까지’이다. 선비 탁발부가 중원으로 남하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다. 
 멀리 동북부 네이멍구 다싱안링산맥 가셴동에서 시작하여 넓은 초원이 있는 후룬베이얼평원 대택으로 1차 이주를 진행하여 수렵과 채집의 생활방식에서 목축위주의 경제로 전환하였다. 
 2차로 남하를 진행하여 내몽고 중남부지역 성락盛樂에 자리잡고 유목과 농업을 병행하였다. 
 386년 북위를 건국한 도무제道武帝(재위 386~409)는 수도를 평성으로 이전하는 3차 이주를 진행하였다.

다퉁시 출토 의장 행렬 도용

 참고로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東胡(번조선)의 후예라 했다.  고조선에 속한 족속 가운데 하나였던 선비족의 발상지에 대해 『위서魏書』에서 대선비산大鮮卑山으로 꼽는데, 여기서 선비족이라는 족명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 중국학자가 대흥안령 북단 알선동嘎仙洞 동굴 벽에서 북위 시대의 석각 축문을 발견함으로써 이 일대가 대선비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를 통해 선비족의 기원은 고조선에 속한 동북 지방이었던 것이다. 

 2부는 ‘북위: 제국의 시대’이다. 평성에서 자리를 잡은 북위는 강력한 군대를 활용하여 차례로 주변의 나라들을 통합하였다. 439년, 5호 16국시대를 종식시키고 북방을 통일함으로써 남북조시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효문제孝文帝(재위 471~499)는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과 더불어 수도를 낙양으로 옮겼으며,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효문제가 사망한 후에 북위는 점차 힘을 잃어갔으며, 마지막에 동위東魏(534~550)와 서위西魏(535~556)로 분열되면서 북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참고로 고구려 장수제 때 고구려 위성국인 북연이 북위에게 망하자 장군 장군 갈로葛盧와 맹광孟光을 보내 북연 백성을 고구려로 이주시키려 했다. 이에 북위의 왕은 기병을 보내어 고구려를 치고자 하였지만 신하들이 극구 만류하여 포기해야 할 정도로 당시 고구려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의 정사인 『위서魏書』「태조기太祖紀」에는 북위의 산서성 대동에는 고구려인 36만 명과 기예공 1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가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고구려와 북위의 관계에서 고구려의 엄청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장수제가 붕崩하자 북위 효문제가 흰 위모관과 베布 심의를 만들어 입고 동교東郊에서 애도식을 거행한 것만 봐도 당시 고구려의 위상을 충분히 살필 수 있다. 애석한 점은, 중국 역사가들과 철저한 사대주의자였던 김부식이 북위가 고구려에 조공을 바쳤다는 사실을 모조리 삭제해 버리고, 도리어 장수열제가 북위에 해마다 조공을 바친 것으로 날조하여 역사의 진실을 왜곡시켰다는 점이다.   

 3부 제목은 ‘공존과 융합의 다문화 사회 : 이민족의 풍속과 한족의 정취’이다.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후 한화정책을 통해 선비의 풍속과 언어 등을 폐지하였지만, 선비는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생활방식과 풍속을 유지하였다. 
 중원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유목·농경문화들이 섞이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북위 사회와 문화를 풍부하게 했다. 
 여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의 문화까지 연결하자 북위의 수도 평성과 낙양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하는 다문화 사회가 꽃피는 국제 대도시가 되었다.

 4부는 ‘불교의 융성’이다. 황제들은 다양한 민족과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불교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북위의 불교는 국가불교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삼존불상

 도성 안팎으로 수많은 불교 사원들이 세워졌는데, ‘둔황석굴敦煌石窟’ ‘윈강석굴雲岡石窟’ ‘룽먼석굴龍門石窟’석굴 사원은 당시 북위의 불교가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윈강석굴 제20호(이영선 제공)

 북위北魏(386~535)를 세운 선비 탁발부鮮卑 拓跋部는 5호 16국 시대의 혼란했던 북방을 통일하고, 중국 남방과 중앙아시아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목遊牧문화와 한漢문화를 공존시켰다. 이번 도록을 통해 수隋나라·당唐나라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북위와 백제의 관계를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참고로 북주의 귀족 양견이 수나라를 세웠고, 당나라를 세운 이연李淵의 조부 이호李虎는 서위를 주도한 20가문 중의 하나로 선비족 출신이다. 수와 당은 모두 그 기원이 선비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대한 기자  daehannama7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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