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전가渭川田家」
사양조허락斜陽照墟落, 궁항우양귀窮巷牛羊歸.
야로염목동野老念牧童, 의장후형비倚杖候荊扉.
치구맥묘수雉雊麥苗秀, 잠면상엽희蠶眠桑葉稀.
전부하서지田夫荷鋤至, 상견어의의相見語依依.
즉차선한일卽此羨閑逸, 창연음식미悵然吟式微.
석양이 마을을 비추고,외진 골목으로 소떼 양떼 돌아오누나.
시골 늙은이 목동을 걱정하며, 지팡이 짚고 사립문에 서 있네.
꿩이 우니 보리 이삭 패고, 누에 잠자니 뽕잎 드무네.
농부 괭이 메고 돌아오며,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 사근사근.
이대로 한가함과 편안함 부러우니, 슬프게 「식미」를 읊조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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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경기도민일보 허준구의 신한시기행 |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위천전가渭川田家」이다. ‘위천전가’는 위천의 농가라는 뜻이다. 위천은 감숙성甘肅省 위원현渭源縣에서 발원하여 섬서陝西 일대를 지나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이 시는 시인이 해질 무렵 위천에 있는 고즈넉한 농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적은 것이다.
【시풀이】 왕유王維(701-761)는 시가, 음악, 회화, 서법 등 예술에 탁월한 조예를 지녔다. 당시의 시대구분은 일반적으로 초당初唐(618-712)과 성당盛唐(713-742)과 중당中唐(766-835)과 만당晩唐(836-907)으로 나뉘는데, 왕유는 성당의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불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지녀 시불詩佛로 불리기도 했다. 자신의 자를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힐維摩詰’을 따서 마힐이라고 하였다.
소동파蘇東坡(1036-1101)는 왕유의 시를 평하면서, “시에 그림이 있고, 그림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명언을 남겼다. 왕유의 「위천농가」는 그야말로 시정화의詩情畵意가 물씬 풍겨나는 시다. 농촌의 풍경과 시인의 정감을 절묘하게 융합하여 ‘정경교융情景交融’ 또는 ‘정경원융情境圓融’의 경지를 보여준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제 모습을 온전하게 발현하고 있는 것을 실답게 제시한다.
해질 무렵 석양이 한적한 시골의 마을을 비춘다. 온종일 온 누리를 환하게 밝히던 저녁 햇살이 제 집을 찾아 서산으로 돌아간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자, 목동은 서둘러 소떼와 양떼를 데리고 후미진 골목길을 따라 식구들이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시골 늙은이는 지팡이를 짚고 사립문에 서서 소떼와 양떼를 몰고 돌아오는 목동을 기다린다. 꿩이 우는 때가 되니, 바야흐로 보리이삭이 팬다. 누에가 뽕잎을 잔뜩 먹고 막잠에 빠지니, 남아 있는 뽕잎은 거의 없다.
해질녘 농부는 종일토록 논에서 뙤약볕 아래 땀 흘려 일한 뒤에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웃 사람을 만나면 정겹게 담소를 나눈다. 헤어질 땐 너무도 아쉬워 머뭇거린다. 하지만 나태주가 「행복」이란 시에서 말한 것처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시인이 보기에 이런 한가하고 편안한 농촌의 삶이 너무도 부럽다. 하지만 시인은 『시詩‧패풍邶風‧식미式微』를 한스럽게 노래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시‧패풍‧식미』는 부역에 나간 사람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픈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다.
by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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