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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교 문화』 동학과 도교

19세기 세도정치 하에서 민생은 날로 어려워졌다. 삼정三政의 문란 등 관官과 양반·토호의 부당한 수탈이 심해지고, 설상가상으로 가뭄과 홍수, 전염병 등의 재해가 잇따랐다. 성리학과 불교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였고,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백성들은 민간 신앙과 각종 예언 사상에쉽게 빠져들었다.

이런 현실을 고민하던 경주 몰락 양반 출신의 최제우崔濟思는 1860년(철종 11) 4월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였다. 갑자기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리는 가운데 상제 上帝의 말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눈 것이다, 서학西學(천주교)에 맞선다는 뜻의 동학東學은 이 체험을 계기로 창시되었다.

동학의 핵심은 전통적인 경천敬天 사상을 발전시킨 시천주侍天主 신앙이었다. 신분이나 직업, 지식 등에 관계 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루면수심정기修心正氣], 절대 보편의존재인 한울님[천주天主]을 내 안에 모시고 그와 일체가 됨으로써 질병이 치료되고 도덕이 회복된다는 믿음이었다. 동학은 이러한 시천주 신앙과 후천개벽 사상을 내세워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빠르게 세력을 키워 갔다.

기존의 유교와 불교에다 친근하면서도 신비한 도교적 요소를 가미한 것은 동학이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루는 수심정기'는 유교적 수양의 의미도 있지만, 마음 수련과 몸 수련을 병행한다는 도교의 성명쌍수론性命雙修論과 그 취지가 흡사하다. 신비 체험에서 상제가 영부靈符를 내려 주며 선약(仙藥이라고 말한 것이나, 최제우가 영부를 불에 태운 후 물에 타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 것, 상제가 영부와 함께주문呪文을 주면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면 장생長生하여 덕을 천하에 펼 수 있다고 한 것등은 좋은 예이다. 선약과 영부, 주문이 모두 도교의 불사약과 부록許鍊, 주문에 상응함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동학에서 도교적 요소는 주로 최제우의 신비체험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이 체험을 계기로성립한 동학의 핵심적 가치나 도덕은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것이었다. 영부를 태워 물에 타 마시고 주문을 외더라도, 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없다고 가르친 것은 핵심가치로서의 유교와 도교적 형식 및 수단의 상대적 관계를 엿보게 한다. 최제우는 기존의 유교나불교적 가치만으로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조선의 민중들을 달래기 어렵다고 보았다.전통적인 경천사상 위에서 한울님과 같은 보편자의 존재를 설정하고, 재래의 민간 신앙과 함께장생, 선약, 불사약, 주문과 같은 도교적 개념과 용어, 방법론 등을 활용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 칼럼의 내용이 본지의 의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강단학계에서 바라보는 도교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여겨져 발췌합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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