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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통 역사학'을 한다는 그들의 가야 주장의 모순

1.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11종을 검토해보니 모두 가야의 '성립'시기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CE 42년이 아니라) CE 3세기로 서술하고 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삼국사기보다 일본서기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42년 김수로의 가야건국'이 기록되어있지만, 일본서기에는 신공왕후가 249년 삼한을 정벌하고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했다고 말한다. (일본서기는 연대가 맞지않으니 120년을 늦추면 369년이 된다.)

임나를 가야로 보는 학계에서는 일본서기의 3세기 삼한정벌과 임나일본부를 '가야의 성립' 시기로 보면서 1세기의 김수로, 허황옥의 가야건국과 역사는 고려때 꾸며진 이야기, 설화로 보는것이다.

2.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니라. 대마도나 규슈에 있던 분국이고 임나는 가야의 분국이거나 대마도, 규슈에 있었다고 하면 "가야의 고분과 유물을 왜 부정하냐"는 헛소리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고 따지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보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소규모 촌락정도의 규모로 밖에는 안보이기 때문에 대마도나 규슈의 분국을 말한 것이라 설명해도 못알아듣는다. 

3. "가야는 연맹왕국에 머물러서 고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거나 "전기 금관가야 후기 대가야로 맹주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믿기 어렵다. 

최근에 고녕가야의 사례처럼 낙동강을 중심으로 가야의 여러나라들이 분포했다면 고대에는 강을 따라 문화와 정치, 사회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산이 많아 교통이 불편하고 연맹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식도 문제가 있다.

과거 대일항쟁기 식민사학자들의 "가야는 발전을 못하고 낙후되어 야마토왜의 지배를 받았다"는 주장이 반영된것으로 보인다. 

교과서에는 전기와 후기 가야연맹을 나누는 근거를 '신라를 침략한 왜를 고구려군이 격퇴하면서 왜군이 퇴각했던 금관가야까지 공격했기때문에 금관가야가 쇠약해지고 고령의 대가야가 맹주가 되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왜군이 금관가야로 퇴각했다는 주장은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임나가라'를 '금관가야'로 보는 인식 때문이다. 고구려군이 왜군의 뒤를 쫓아 도착한 임나가라는 금관가야였다기보다는 대마도나 규슈일 가능성이 높다. 

고고자료도 봐도 그렇고 광개토대왕이 초기부터 백제 관미성을 빼았고 백제와 왜 연합을 끊어내려했던것을 봐도 임나가라는 백제와 왜의 교통로, 왜의 신라침략시 군영을 설치했던 대마도일 가능성이 높다.

4. 학계에서 일본서기를 신뢰해야한다는 근거로 드는것은 일본서기에 인용되어있는 백제삼서의 기록때문이다. 백제인들의 기록에도 안라, 기문, 대사, 가라 등이 나오니 가야를 가리킨다는것이다.

그런데 백제삼서의 기록에서 말하는 안라, 기문, 대사, 가라는 가야가 아니다. 연대도 맞지않고 역사와도 맞지않다. 

예를들어 학계에서 대가야로 보고 있는 일본서기의 '가라'는 백제기록에 따르면 '4세기에 신라의 꼬임에 넘어간 사지비궤의 공격으로 멸망해서 백제에 항복'하는데, 대가야는 백제에게 멸망하지 않았고 그 왕족들이 백제로 귀순하지도 않았다. 

이런 분명한 모순들은 누구도 언급하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이게 소위 '정통 역사학'을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글 출처 : 박덕규 페이스북 

링크 출처 : https://www.facebook.com/duckgyu.park.7/posts/5164905093572755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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