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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성사의 일화

수운은 상제님께 천명을 받은 1년 뒤인 신유년 6월에 '포덕문'을 지어 세상에 널리 도를 펼쳤다.  

그러나 동학세력을 두려워 한 조정은 그해 11월 20일 정운구를 시켜 수운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누명을 씌워 용담정에 머물고 있던 그를 체포하고 1864년(고종1년) 1월 대구감영으로 이송하게 된다.
 
오지영의 동학사에는 최수운 대성사의 대구감영에서 참형 당시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참형을 맡은 망나니의 칼이 그의 목을 쳤으나 그의 목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세 번을 내리쳤으나 베어지기는커녕 상처도 내지 못하자 그 자리에 있던 서헌순을 비롯한 모두가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서헌순이 '그대의 참형은 나랏님의 명이니 나도 어찌할 수가 없소. 어명을 따라 주시오.' 라 호소하자. 

최수운은 '나랏님의 명이 중하다 하나 어찌 하늘님의 명에 미치겠소. 태어나고 죽는 것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소. 하늘님께서 내신 이 목숨. 하늘님의 천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죽는 것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외다.' 라 하였다. 청수 한 그릇을 내어달라 한 수운은 상제님께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그제야 그의 목이 베어지니 최수운은 미처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41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랏님의 명이 중하다 하나 어찌 하늘님의 명에 미치겠소. 태어나고 죽는 것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소. 하늘님께서 내신 이 목숨. 하늘님의 천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죽는 것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외다' 라 하였다. 청수 한 그릇을 내어달라 한 수운은 상제님께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그제야 그의 목이 베어지니 최수운은 미처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41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 참고 : 발표 인문학, 읽나바

참형도 (상상)

 

박상준 기자  sjbak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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