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임금께서 남쪽으로 행차했다고 하였는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 그리고 『홍사한은』에
모두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군세기』와 『홍사한은』의 5세 단군 구을丘乙<제위 16년> 16년 정축년(기원전 2084년)에
“임금이 친히 당장경唐藏京 고력산古曆山에 행차하여 제천단을 쌓고 주변에 환화를 많이 심었다. 7월에 임금이 남쪽으로 행차하여 비류강沸流江을 거처 송양松壤(江東)에 이르러 병을 얻었다. 얼마 안 되어 강동에서 세상을 떴으며 대박산大博山에 장사 지냈다. 우가牛加 달문이 왕위에 올랐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7월에 임금께서 남쪽으로 행차했다고 하였는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 그리고 『홍사한은』에 모두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세 단군 구을이 평양을 순시하던 중 평양에서 갑자기 병이 나서 돌아가셨는데 7월 한 더위인데다 당시로서는 빠른 운송수단도 없거니와 냉장, 냉동 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수도인 하얼빈까지 수 천리 길을 상여로 운상하지 못하고 부득이 평안도 강동에 장례를 치루었던 것이다.
비류강沸流江은 평안남도 강동군 대박산 북쪽을 흐르는 강으로 평남 와룡산에서 발원하여 졸본천을 지나 성천을 거쳐 강동江東 대박산 북녘을 흘러 대동강의 중류에서 합류한다. 송양은 평안도 강동현을 말한다. 따라서 현재의 평양 대박산의 단군릉은 5세 구을 단군의 릉이다.
『미수기언』에 송양에 단군릉이 있다고 하였고 『문헌비고』에도 단군릉이 강동현 서쪽 3리에 있다고 하였고, 『여지승람』에도 “단군묘가 강동에 있다고 하였으나 왕검단군은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데 어찌 능이 있겠는가? 이마도 그 아드님의 능일 것이다.” 라고 의문을 표시한 기록이 있다.
북한이 다시 단장한 현재의 5세 구을 단군릉은 1993년 증축 공사 때 원래의 무덤자리에서 4㎞정도 이장한 것이다. 1926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 사장 월남 이상재 선생과 동아일보 사장 고하 송진우 선생이 모금을 하여 대박산의 단군능을 보수하고 참배한 적이 있다.
한때 풍수들 사이에 단군 묘를 함부로 이장했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설사 그 말이 그럴듯하다 하더라도 그것도 본인의 운이 그렇게 되려니까 이장도 하게 되는 것이지 죽을 운이 아니었다면 이장하는 일도 없었을 것으로 본다.
2005년 7월 초순에 연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발표 때 북한의 서기장을 비롯한 17명의 북한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필자가 평양 단군릉의 실체와 연길의 국자가 거리가 단군의 고향이며 왕검의 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붙여진 거리 이름이라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북한학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표정이 없었으며 중국동포 학자와 남한의 학자들은 마치 전설의 고향을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학자들의 무표정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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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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