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수는 이른 새벽 우물에서 길러온 샘물을 말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인적 없는 시간에 가장 먼저 떠온 샘물이어야 지기(地氣)의 정수이고 기도의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마음가짐부터 지극한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흰 사기대접의 맑은 물 한 그릇은 우리나라 옛 여인들의 청아한 마음이 담긴 종교 자체였고 어머니들의 주기도문이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난 여인은 목욕재계한 후 샘터에서 길러온 물 한 그릇을 상위에 올려놓고 뒷마당에서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민초들의 원초적인 신앙이었고 고졸한 샤머니즘이었다.
정화수는 추호의 사심도, 한 점의 부정한 마음으로도 마주 대할 수 없다. 천지신명의 영험이 서려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민족은 우리뿐일 것이다. 두 사람의 영혼이 생명의 상징인 물로서 영원히 만나는 의식이며 천지신명이 두 사람의 결합을 지켜본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정화수 한 그릇에도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면 천지신명과 교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정화수는 물 한 그릇의 의미가 아니다. 땅에서 솟아나는 청신한 새벽지기(地氣)인 샘물과 그 속에 내려와 앉아있는 비취빛 하늘이 있다. 또한 무릎 꿇고 앉은 청아한 여인의 지극한 정성이 함께 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룩한 성전이다. 그대로가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이 된 신성한 제단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믿었던 우리 선조들은 정화수 한 그릇에도 심오한 ‘한’사상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은 우리 선조들의 우주관이었으며 민족원형을 지탱해 준 삶의 철학이었다.
따라서 ‘한’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우리민족의 실존이요, 생물적인 본능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에너지였다.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것으로 믿고 있었다.
모두가 지성으로 하나가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그런 기적도 일구었다. 반세기만에 세계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강의 기적’이 그렇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길거리 응원은 '한'의 속성을 가장 잘 대변한다.
온 국민의 필승의 염원과 일사불란한 응원, 선수들의 투지와 불패의 정신무장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난공불락이던 월드컵 4강의 벽을 허물었다.
민족원형인 ‘한’ 특유의 ‘신바람’이 가세하면 불가사의한 저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시청 앞을 구름처럼 운집한 수만 관중들이 붉은 악마 복장을 하고 ‘오~ 필승 코레아’를 외치는 모습은 그대로 장관이었다. 온통 붉은 거리는 현대판 정화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외신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며 이 모습을 특종으로 지구촌 곳곳에 타전했다. 독특한 한국인의 신화 같은 이미지가 세계인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서구사회라면 그런 군중이 모이면 법이 무력해지고 미상불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까지 거리응원은 질서 정연했으며 신명나는 축제로 승화함으로써 응원에서도 우리는 세계를 제패했다.
법 이전에 하늘 무서운 줄 아는 민족원형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의 여인들이 정화수로 천지신명과 하나 되었던 DNA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민족을 아름답게 하나로 만드는 마법의 램프가 바로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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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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