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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강역은 어디까지? 강동6주, 동북9성, 철령위를 통해 본 고려 영토

고려의 강역은 어디까지일까 강동6주, 동북9성, 철령위를 통해 본 고려 영토 (문사채널) https://youtu.be/ZMGqTkfrjF0 

아래는 문사 채널에 올라온 내용 전문이다. (모든 캡쳐의 출처도 문사 채널)

국정교과서나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막론하고 고려에 북방 경계는 압록강 서쪽에서 함경도 원산 부근에 함흥평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려는 만주는 커녕 한반도도 3분의 2밖에 차지하지못한 작은 나라에 불과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과 중국의 일부 사료는 달리 말하고 있다. 
인종 원년(1123)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적응은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로 막히고 서쪽인 요수의 맞닿고 북쪽은 거란의 옛 땅과 접하고 동쪽은 대금과 맞닿는다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편]

고려 서쪽 강역은 압록강이 아니라 지금의 랴오닝성 랴오요수)에 맞닿는다는 것이다. 서긍이 말하는 요해는 바다가 아니다

금사지리지는 동경로 산하 징주(등주)를 본래 요해주라고 말하고 있다 요해에 대해 중국 학계는 요동반도 남단의 랴오닝성 하이청(해성) 시로 비정한다

요동반도 대부분이 고려 땅이라고 당대의 송나라 사신이 설명하고 있다. 그럼 고려사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서북은 당 이래로 압록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출령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고려사 지리지]

조선 초기의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의 고려 영토 범위다일반에 알려진 고려의에 국경 경계선이 서북으로 는 압록강 동북으로 는 현재 북한의 원산만이라는 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다

고려 국경선 획정 에 의문을 제기한 이가 인하대 윤한택 (고조선 연구소)교수이다

윤한택 교수는 서희의 강동 6주는 압록강 동남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요하 동쪽의 존재했으며 요하가 고려의 서쪽 경계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사, 요사 등을 근거로 고증했다

고려시대의 압록강은 현재 북한 쪽 압록강이 아니라 고대 요하를 가리키는 압록강이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이는 '록'자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요수는 일명 압록으로 지금은 안민강이라 한다 (삼국유사 권3 법흥왕 )

현 요녕성의 요하가 고려시대의 압록강이였다면 새롭게 조명을 해야 할것들이 많다

서희 장군이 거란의 침략에 맞서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차지하게 된 지역과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지역이 현 압록강 이남 평안도 일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얘기다

이는 압록강의 개념과 이동을 고려하지 않은  선입견으로 고착화된 개념의 기인된 것이며 마땅히 현 요하 동쪽에서 강동 6주와 귀주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고려의 서경이었던 평양이 원사에선 동녕부라 하고 현재의 요동지역이라 하였으며 원나라에서 고려의 왕들을 심양왕이라 한 것 역시 고려의 강역과 무관하지 않다.

철령위 위치

원명 교체기에 발생한 철령위 문제를 통해서도 고려의 영역을 파악할 수 있다

명의 철령위 설치는 단순하게 고려와 명나라의 국경선 확정에 머무르지 않고 고려의 고토 회복에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려에서는 이 철령위 설치를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따라 원에게 빼앗겼던 고토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되는 중요한 사안이 된것이다

고려 우왕은 재위 14년(1388) 2월 밀직제학 박의중을 명 태조 주원장에게 보내 철령위 설치를 중지해 달라는 국서를 보내서 이렇게 설명했다

조정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구역이 정해져 있으니 철령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고주,화주,정주,함주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원래 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고려사 우왕 14]

처음에 명나라 황제가 말하기를 철령을 따라 이어진 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원래 개원로에서 관할하던 군민이 소속해 있던 곳이니 중국인 여진인,달달인, 고려인을 그대로 요동에 소속시켜야 된다고 하였다. 최영이 백관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명나라에 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총서]

고려는 이 중요한 사안을 결국 명나라와 전쟁으로 해결하고자 요동으로 군사를 출병시켰다. 이것은 결국 철령위가 요동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고 고려의 영토 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얘기다

윤관 9성 위치

또한 모든 교과서는 윤관 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았다는 곳도 지금의 함경남도 지역 으로 규정하고 있다 윤관의 동북 9성은 함경도 지역이 아니라 두만강 이북 700리에 있는 선춘령 일대였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 [고려사 지리지]

고려 동계에 북쪽 끝이 공험이라는 것이다. 윤관이 쌓은 9성의 가장 북쪽이 공험진 선춘령인데 그 곳에 고려땅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공험진 선춘령이 고려 강역의 북쪽 끝이다

예종 2년 평장사 윤관이 이 원수가 되어 지출밀원사 오쳔총을 부원수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을 두었는데 공험진 선춘령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명종 8년에 이르러 연해명주도라 불렀다. [고려사 지리지]

 조선은 태조 때부터 최북단의 동북쪽 국경이 고려 윤관이 개척한 9성의 선춘령과 공험진 임을 분명히 선언하면서 명나라로부터 확답을 얻어내고자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조선은 명나라와 공험진을 국경으로 삼는 것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는데 이 사실은 태종이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 제학 김첨과 왕가인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조선의 국경에 대해 설명한 대목에서 알 수있다

밝게 살피건데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 길주, 단주, 영주, 웅주, 함주 등의 주인데 모두 본국에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세종실록 지리지는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조에서 두만강가에 있는 경원에서 북쪽 700리가 공험진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원은)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00리, 동북쪽으로 선춘현에 이르기 700여리, 서북쪽으로 오음회의 석성기에 이르기 150리다.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함경도 회령도호부의 고적 조는 공험진 선춘령에 세웠다는 비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 에 있다. 윤관이 땅을 넓혀 는데 여기까지 와서 공험진에 성을 쌓고 드디어 고개위에 비석을 세워 고려지경이라고 새겼다. 비석 사면에 모두 글씨가 있었는데 호인들이 다 지워버렸다

당대의 쓴 모든 사료는 고려 북방 국경인 공험진 선춘령에 대해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말하고 있다. 함경남도 남부라고 말하는 사료는 하나도 없다.

조선 건국의 계기(위화도 회군)가 된 철령위에 대해서 현행 국정교과서는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한 곳이 함경남도 안변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철령위를 설치한 곳은 동쪽인 함경남도 안변 인데 정작 고려군은 왜 동쪽에 아니라 북서쪽인 요동으로 향했을까?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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