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뫼 안호상(1902~1999년) 박사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9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족식과 함께 ‘제1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25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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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윤정로 세계일보 부회장, 김선적 통일광복민족회의 의장, 이 전 총리, 김익수 한국효문화연구원 이사장 겸 홍익인간사상연구원장, 원영진 대종교 전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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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호상 박사(安浩相, 1902년 ~ 1999년) |
고 안 박사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장관을 맡아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을 국가교육의 기본으로 설정하는 등 일생을 민족정체성 찾기에 바쳤다. 안 박사는 호는 한뫼이고 1924년 중국 상하이동제대학[上海同濟大學] 예과를 거쳐 1929년 독일 예나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45년 8·15해방 전까지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1945년 8·15해방과 함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8~50년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다. 문교부장관에 부임하자 마자 민족정신회복을 교육시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광복후 일제의 오랜 민족교육 말살정책으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정도로 피폐해져 있는 교육 부분의 제도정비와 함께 홍익인간의 교육이념 정립을 하는데 안호상 장관의 활약이 있었다.
1949년 초대 학도호국단장, 1951년 한국청년단장, 1958년 동아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1960년 무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1969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 회장, 1973년 마을금고연합회 회장, 1976년 한독(韓獨)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6년 10월에 유봉영·박창암·이유립·문정창·임승국 등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를 조직하였다.
1981년 8월31일 안호상 박사를 청원자로 하고 권정달 당시 민정당 의원 외 18인을 소개의원으로 해 국회 문공위원회에 청원서 제출했다. 같은해 학술원 원로 회원이 되었고 1978~88년 경희대학교 연구교수, 1978~89년 국제문화협회 총재, 1981~91년 한성학원(한성대학교) 이사장, 1987년 권율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1992년 민족종교 대종교의 최고지도자인 총전교에 오르기도 한 안호상 박사는 대종교 김선적 종무원장과 함께 1995년 정부의 불허 방침을 거부한 채 북한 단군릉 조성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한글운동과 한국상고사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학계와 교육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독일 십자훈장, 외솔상, 일본 학사회 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주요저서로는 〈철학개론〉·〈논리학〉·〈민주적 민족론〉·〈헤겔의 판단론〉(독문)·〈배달동이겨레는 동아문화의개척자〉(국영합본)·〈겨레역사 6천 년〉 등 다수가 있다.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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