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풍속화 무동(舞童)에는 ‘춤추는 아이’가 나온다. 이 그림에는 피리와 해금, 대금을 불고 북과 장구가 어울린다. 삼현육각의 장단에 맞춘 무동의 춤사위와 휘날리는 옷자락에서 신명이 묻어난다. 악사도 춤추는 무동도 흥에 겨워있다.
이처럼 우리겨레의 DNA속에는 가무와 신명이 각인되어있다. 특히 보름달이 떠오르는 한가위에는 풍물놀이가 흥과 멋을 더했다. 박경리는 ‘토지’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한산 세모시에 비유했다. 온기가 없는 처연한 월색(月色)을 보며 소복한 청상을 연상했음 직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를 바랄만큼 추석은 즐거운 명절이다.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고 헤어진 피붙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년처럼 제사를 모실 것이다. 가문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과채탕적을 마련하고 과일도 조율시이라 하여 대추, 밤, 감, 배를 제수로 사용한다.
그러나 아무리 간소한 제사라 해도 감, 밤, 대추 세 가지 과일은 반드시 진설해야 한다. 고도의 상징성과 지극한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추를 제상의 첫 자리에 놓는 이유는 빛깔이나 맛이 좋아서가 아니다. 대추가 지닌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다.
원래 대추는 한 나무에 많은 열매들이 열린다. 아무리 비바람이 치고 모진 태풍이 불어도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 독특한 생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밤(栗)을 쓰는 이유도 교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한 알의 씨알이 땅속에서 썩어짐으로 뿌리를 내리고 우람한 거목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밤나무의 경우 최초의 씨 밤이 다른 씨알처럼 썩지 않고 생밤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따라서 밤은 나와 조상과의 영원한 연대를 상징한다. 조상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는 영적 동질성을 가장 잘 대변하기 때문이다. 조상의 위패나 신주를 밤나무로 만드는 이유이다.
끝으로, 제사상에 감을 빼지 않은 이유도 깊은 뜻이 있다.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지만 감씨를 심은 자리에는 절대로 감나무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감씨를 심어도 그 싹은 감나무가 아니라 고욤나무이기 때문이다.
감나무가 되려면 감씨에서 자란 고욤나무가 3, 4년쯤 자랐을 때 그 줄기를 대각선으로 찢어서 기존의 감나무 가지로 접을 붙여야 한다. 따라서 감의 상징성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배워야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고도의 교훈성 ‘메타포’를 함의(含意)하고 있다. 생가지를 찢어내어 접을 붙일 때 아픔이 따르는 것처럼 교육도 사람다움을 갖추는 제2의 ‘탄생’임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 선진국 수준을 밑돌고 자식 낳는 일을 귀찮아한다. 혼인을 성가시게 생각하는 젊은 혼남혼녀 즉, ‘싱글’들이 늘어나고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이혼한 사람이다. 자식까지 버리는가 하면 단군 흉상의 목을 자르는 광신자도 있다.
그러나 업보(業報)는 남의 것이 아니다. 던진 낫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가슴으로 되돌아와 꽂히기 마련이다. 사람의 도리를 벗어나 업(業)을 짓고 일상에서 안일과 나태에 빠지는 ‘매너리즘’은 경계해야 한다.
온갖 패륜이 저질러지고 사람을 다듬어야 할 교육이 치부와 출세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을 바라보면 제사상에 놓인 감, 밤, 대추 보기가 민망해진다. 후손을 위해 정성을 다했던 조상들의 염원이 속 빈 강정이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뿌리’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한가위에는 감, 밤, 대추의 의미를 되새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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