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정부는 해원(解寃)에 나서라 "
1. 일본은 끝까지 악마를 택했다
2. 우키시마호는 어떻게 침몰했나
3. 나는 우키시마호를 알고 있다
4. 한·일 정부는 해원(解寃)에 나서라
5. 오늘 우리는 역사에 탄원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후 한국인 징용·징병자에 대해 극악한 용도 폐기를 셀 수 없이 자행했다. 난징대학살, 관동군 731부대 인간생체실험, 외국인 강제연행·강제노동, 일본군의 세계여성 성폭행, 아시아 대규모 약탈, 각종 학살…, 입에 올리기도 싫은 잔혹한 범죄들에 대해 일본은 독일과 같은 제대로 된 청산이나 반성을 아직까지도 외면하고 있다. 아니 한술 더 떠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적반하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행세깨나 하고 있다. 이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모순이 벌어지는 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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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생존자 합동증언대회에서 우키시마호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김동연씨. 김동연씨는 스가와라조에서 노무자를 관리하였다. 그는 오미나토 주변 지역의 노동실태 등 당시 정황을 명확하게 증언하였다. 특히 승선 직전 오미나토해군경비부 장교들이 해군승무원들에게 승선을 강요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증언했다.(1995. 12. 2 충남 천안시민문화회관 대강당) |
◆‘철면피 일본’이 가능한 이유
우키시마호 사건 72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측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배상, 유해 발굴·송환, 공식적인 사죄 등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 또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생존자·유족 등과 민간단체들의 목소리는 2003년 오사카고등재판소가 사법적 제스처로 간단히 일축해줬다. 그러니 日정부로선 적당히 언론 통제하고 귀를 닫으면 그만인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건 광복 72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약소국이란 현실이다. 비정한 강자독식 법칙은 국가 간 이해가 얽히는 외교 상황에선 교묘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포장된 일방통행으로 굴절돼 드러난다. 이는 200개가 넘는 국가의 이해득실이 얽히고설키는 UN이 좋은 본보기다. 아무리 많은 국가들의 뜻이 집약된 의결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영·프·중·러)의 거부권 하나로 뒤집혀 버린다. 군소 약소국의 목소리는 냉엄한 힘의 논리에 묻혀버린다.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인 것은 일본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지금껏 미국 다음 가는 유엔 분담금을 내며 ‘돈질’을 해왔어도 뜻을 이루지 못한 점이다.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겐 재앙이다. 비록 일본이 그 꿈을 이루진 못했어도 그들의 국력과 국제사회에서의 기득권은 우리에게 ‘넘사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일본은 진작부터 G8(미·일·영·프·독·캐·이태리(G7)+러시아)에 진출해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강대국으로 행세하고 있다. 우리와 일본의 체급 차이는 그만큼 현저하다.
이 같은 현실 속에 일본 입장에선 ‘하찮은’ 민간의 목소리에 일희일비하거나 우키시마호 사건 같은 아킬레스건을 들춰내 ‘긁어 부스럼’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강대국들도 공범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점령지 일본에서 군정(軍政)을 펼치는 동안 일왕을 비롯한 1급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같은 시기에 군정을 펼친 한국에선 일제에 빌붙어 동족의 피를 빨던 부류들에게 면죄부에 더해 권력과 지위까지 쥐어줬다. 이로써 미국은 한일 양국의 야만과 비극의 역사 청산을 좌절시켰다. 거기에 더해 불의한 기회주의자들에게 재기와 득세의 기회까지 부여한 것이다.
미국은 왜 그랬을까? 2차대전 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는 데는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열강이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미·일 양국은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을 사이좋게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그 시점에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미국에 대한 걱정은 이 밀약으로 해결됐다. 이어 일본은 제2차 영일동맹과 포츠머스 조약 등을 잇달아 성사시켜 열강들이 대한제국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그 뒤 일본이 무주공산이 된 한반도의 주인으로 들어앉는 건 일사천리였다. 결국 일본이 대한제국을 손아귀에 쥔 단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반도를 손에 넣고 중국과 동남아까지 세력권에 접수한 일본은 내친 김에 미국까지 손보려 했다. 그렇게 ‘욱일승천’하던 일본에 원자폭탄 세례로 뜨거운 맛을 보여준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는 건 예정된 수순. 그런데 미국은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을 단죄하고 불행한 역사를 청산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일본의 1급 전범들의 정상에는 히로히토 일왕이 있었다. 점령군 사령관인 맥아더는 오히려 히로히토와 그 일가를 사면하는 방패막이가 돼줬다. 그들의 헤아릴 수 없는 범죄행위를 도쿄국제전범재판소에서 거론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우키시마호 사건 역시 ‘증거불충분’이라며 제소를 기각했다.
미국은 원래 인디언들의 땅을 유럽인들이 주인의 피로 물들이고 세운 나라다. 그런 불의의 역사를 뒤에 감춘 미국은 그 뒤 ‘세계의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자칭 ‘세계의 경찰국가’가 됐다. 그 시대 제국주의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태생적으로 그 같은 불의와 위선 DNA를 가진 나라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해보면 미국이 일본의 악행에 면죄부를 준 근원적 이유는 간단해진다.
제국주의 침략기에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자유로운 열강은 없다. 때문에 그런 범죄에 대해 강대국끼리 완전한 역사 청산을 하길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결국 2차대전 뒤 전후처리란 강대국 간의 동질감에 바탕한 야합이다. 그러니 일본이 저지른 셀 수도 없는 범죄들을 일일이 들춰내 단죄하려는 강대국은 없었던 것이다.
◆끝나지 않은 악몽
일본은 패전 후 독일처럼 연합국들이 분할 점령하는 대신에 미국 단독으로 군정(軍政)을 펼치게 됐다. 일본 전범들은 이때 잠시 검거됐다가 군정이 끝나자 곧 복귀해 사회 주류로 안착했다. 그들에겐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강탈해 채워놓은 창고와 극진한 영웅 대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오늘날 일본 극우세력의 뿌리다.
한국 역시 종전 후 미 군정에 들어갔다. 미국은 한국에서 외세 개입에 반대하고 완전한 민족자주독립을 주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했다. 대신 강자에 빌붙어 살아남는 법에 달통한 기회주의자들, 즉 친일세력의 손을 잡았다. 독립운동세력에 ‘빨갱이’, ‘사회혼란’ 등의 딱지를 붙여 섬멸하려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민족자주를 부르짖는 ‘골치 아픈’ 강골들보다 시류에 영합하고 아부 잘하는 자들이 부려먹기 편했던 것. 새로운 강자를 등에 업은 친일 기회주의자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독립운동가들을 제압하고 또다시 권력과 부귀를 거머쥐었다. 생존과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이들은 어느 쪽이 대세인지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한 점 부끄럼도 없이 변신한다. 친중, 친일, 친미로 끊임없이 변색해온 궤적이 곧 그들의 생존 역사다. 미국을 비롯한 외세는 불의한 역사 청산과 정의에 바탕한 미래 창조 같은 것은 애초 관심 밖이었으므로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1급 전범들의 악령이 우익이라는 탈을 쓰고 나라를 주도하는 일본, 그들의 물밑 지원을 받는 新친일파들이 품위 있는 메이저로 행세하는 한국. 그러니 일본인이 직접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만 다를 뿐 식민지배 악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완전한 역사 청산이 되기 전에는.
◆세계일류국가 일본이 되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목숨 걸고 싸우다가 이로 인해 아물기 어려운 상처와 원한이 쌓였다면 어떻게 해야 완전하고 영구적인 화해가 될까? 씻기 힘든 트라우마와 원한을 푸는 건 쉽지 않은 난제다.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에 ‘해원(解寃)’이란 게 있다.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푸는 거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영구적 평화공존이란 있을 수 없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존경을 바란다면, 이웃나라들과 진심어린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답은 해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시기에 행했던 만행들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관련 자료들을 공개해 은폐된 의혹들의 진상을 규명하도록 협조해야 하고, 진심을 다해 사죄해야 한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과 학대, 피해에 대한 실질적이고 수긍할 만한 배상이 이어져야 한다.
이런 일련의 해원과정을 거친 다음 후세들에게 지나간 죄과에 대해 진실되고 일관된 교육을 지속해 항구적인 평화공존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렇게 ‘뻔뻔하고 불의한, 돈만 아는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진정한 국제사회의 리더로 거듭날 기회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게 아닌가.
◆한국 정권교체에 거는 기대
지난 정권은 ‘대통령 문재인’을 막기 위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국가기관 직원들을 동원해 상대 흠집내기와 흑색선전, 여론 조작에 혈안이 됐다. OO연합, OO부대 등 어용단체를 지원해 여론몰이에 이용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들의 비위는 촛불혁명 이후 속속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정권 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경쟁이라 하기엔 정도가 지나쳤다. 사회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적폐로 나라를 망쳐가던 그들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증명하듯 채 십 년을 못 채우고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레드카드를 받았다. “이게 나라냐”로 대변되는 적폐와 불통정치, 비리, 특혜·특권 등 청산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러고는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9년 만에 주권자의 신임을 얻은 문재인 정부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순항 중이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다”를 환호하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지난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지켜본 국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그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인 안동 임청각의 몰락을 언급하며 “(우리는)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또 그는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다”며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그 순간 지난 72년간 거듭돼온 좌절 끝에서 불의한 역사 청산의 희망을 봤고, 기대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 바로잡기’에서 희망을 본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먼저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단원고 기간제 교사 故김초원·이지혜 씨를 순직 인정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5·18 기념식장에서 편지를 낭독한 유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 등을 국정 100대과제의 선두에 내세웠다.
새 정부는 해원과 공존공영의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이 기조와 정신을 끝까지 지속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정의와 상식이 통하고 ‘갑을’이 없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구현되는 걸 보고 싶다. 아울러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바로잡기에 즉시 나설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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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광복절 경축사 내용 중 (사진=연합뉴스 화면 캡쳐) |
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그에 대한 응답이 나왔다고 본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남북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며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이다. 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 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키시마호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 들은 한국정부에 이런 자세를 바란 것이고,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차가운 일본 땅 수 천여 원혼들이 귀향을 고대하고 있는 우키시마호 사건과 그 외 은폐된 학살사건에도 머지않아 해원의 손길이 미칠 거라 기대한다. 그것이 국민의 부름을 받은 정부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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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키시마호 항로 비교.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항한 우키시마호는 부산으로 향하는 항로를 이탈한 채 일본 본토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가 폭파, 침몰됐다. (자료 정리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회장 전재진) |
박달 기자 pc2000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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