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남산 타워’는 예전에 단군을 모시던 국사당의 윗자리이다. 예전의 남산 식물원 뒤가 국사당 자리였다. 일제 항쟁시기에는 남산식물원 자리에 일본 천왕을 모셔놓고 참배를 강요하던 신사 자리였다. 그 당시 서울 남산의 신사는 공주의 부여신사와 더불어 일본이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곳이다.
우리 국민은 강요에 의하여 신사 참배를 하면서도 일본신사 위쪽의 국사당 자리를 마음에 두고 속으로는 단군에게 참배하였다.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신사를 지은 일본인 건축가는 본국으로 소환되어 사형 당하고 말았다. 해방 후에 신사는 헐리어 식물원이 들어섰고 꼭대기에는 서울을 조망하는 남산타워가 세워졌다.
그럴 즈음 한 도인이 공사 중인 남산타워를 보고 탄식하기를 ‘단군을 모신 국사당 자리를 허무는 것도 잘못인데 꼭대기에 저렇게 거대한 혈침을 박으니 앞으로 서울 시민들은 두통약을 소여물 먹듯이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라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두통약 광고의 현 주소를 보자. 두통약을 7자로 하면 ‘삼천만의 두통약’ ‘한국인의 두통약’ 5자로 하면 ‘맞다 ○○○’ ‘남편 두통약’ ‘아내 두통약’이라는 광고대사가 이미 귀에 못이 박힐 정도가 되었다.
2007년 봄까지만 해도 남산 식물원 바로 뒤편의 옛 국사당 자리 부근 지하에는 <남산 단군굴 수도원>이라는 교실 크기만 한 제법 큰 공간이 있었으나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조성 시기는 2017년 현재로부터 60년 전인 1957년, 단기 4290년이었다. 굴의 내부에는 옹색하지만 단군 영정이 모셔져 있었고 해, 달, 별의 3선녀 상이 구석에 놓여있었다.
이에 몇몇 관심 있는 이들이 2006년 3월 1일 지하 공간을 답사한 후 보존 운동과 더불어 국사당의 복원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서울시에서 무허가 불법물이라 하여 한달 후인 4월 중순에 관리자로 거주하고 있던 선宣선생 가족을 내 보내고 폐쇄조치를 내렸다. 2007년 초여름에 가 보았더니 굴 입구를 철조망으로 봉쇄해 놓아 들어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해에 남산 식물원도 헐리고 그 일대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2009년 4월 11일 남산에 올라 그 곳을 찾았더니 연원을 적은 돌비석도 없애버렸고 들어가는 길목에는 벌써 나무들이 자라 들어와서 입구의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대충 눈짐작으로 지하의 터를 가늠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외세의 힘에 의하여 민족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어디 일제의 소행뿐이던가! 지금도 또 다른 외세가 남은 맥마저 잘라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선천시대는 지나고 인존시대로써 후천 시대의 도래를 말하고 있으며 또 오늘의 세계는 서세동점西勢東漸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동세서점東勢西漸 시대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또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배속된 형이상학적인 의미에 따르면 세계의 문화가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자리(始終之位- 始於艮 終於艮)이므로 서구의 정치문화가 한국에 종착되면서 남북이 분단되었으나 통일이 되면 또 다른 새로운 정치문화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86아시안 게임이 아시아의 집들이였다면 88올림픽은 세계의 집들이였으니 앞으로 국운이 트이기를 기대해본다. 남산을 내려오면서 동트기전의 마지막 어둠이 아니겠느냐는 아내의 말에 우리 문화의 200년 주기의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임을 생각해본다. 바야흐로 한글과 홍익사상이라는 한류가 한껏 그 힘을 발휘하여 세계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가 돌아오기를 또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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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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